모든 부모에게 추천하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기본서
이 책을 읽고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꿈에 부풀어 설레는 가슴이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고. '과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까?'하고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를 띄운 채, 상상만으로도 신나고 내 삶을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해줄 것 같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행복했던 그때가 그립다고. 어린 시절의 내가 상상하던 미래시대에 나는 훨씬 더 가까이 왔다. 아니, 이미 나는 그 미래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생각 속에만 존재하던 수많은 것들이 현실화된 미래시대를 드디어 살게 된 내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 슬프다. 세탁기와 냉장고가 상용화되고, 삐삐와 시티폰을 거쳐 휴대폰이 대중화될 때 그 누구도 이런 발전의 부정적인 미래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계와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고, 사람들은 거기서 희망을 보았다. 그때가 참 좋았다. 기술혁신과 진보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선사해주었고, 그것이 삶의 행복에 일조했다. 상상만 했던 어떤 제품이 실제로 나오면 눈이 동그래져서 '갖고 싶다'고 생각했고, 미처 생각조차 못했던 기특한 제품들이 최첨단으로 무장하여 등장한 것을 보면서 그런 꿈같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이 시대의 풍요에 감사했다. 하지만, 이제 난 모든 진보와 정보 및 기술 혁명 앞에서 멈칫한다. 그것에 손을 대도 되는지, 그것을 내가 누려도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나와 우리에게 유익할지 고민이 된다. 이렇게 젖어들면 헤어 나올 수 있을까, 인간인 내가 물질과 시스템 안에 갇히지는 않을까, 모든 게 쉬워지고 편해지고 공개된 세상에서 어떻게 인간의 특별함이 부각될 수 있을까.... 미래가 뿌연 회색빛처럼 느껴진다. 가치판단을 해야 하고, 내게 기준이 필요하다. 희망을 선택하고 싶은데, 솔직히 어떤 것이 희망인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내가 정리하고 계획하고 처리해야 하는 것들을 대신해주면 나는 분명히 시간이 남아서 책도 더 읽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매일 모든 게 내가 아닌 인공지능에 의해 완벽하게 준비되어 하얗고 완벽하고 딱 맞춘 틀 안에 살게 되는 게 정말 행복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나는 뭔가 부족하고, 때론 실수하고, 어떨 때는 시간을 놓치며, '아이쿠'하고 깜빡했던 걸 알고 후회하는 것도 좋은데 말이다. 내 감정을 읽고 나에게 맞는 노래를 틀어주는 인공지능 로봇보다, 내 감정을 다 알지 못해도 '갑자기 네가 생각나서'라는 카톡 메시지와 함께 자기가 지금 듣는 음악 한 곡 파일로 보내주는 한 사람이 좋은데 말이다. 빅데이터로 나의 생활과 소비 패턴, 내 삶에 일어나는 이슈들을 파악하고 내 필요까지 읽어내어 내가 원할만 한 것을 알아서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보다, 온 가족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시식도 하며 카트를 끌고 다니다가 충동구매를 하는 장보기가 더 좋은데...
이 책의 저자가 쓴 '필요성의 미학'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1933년 미국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구호였던 "과학은 창조하고, 기업은 응용하며, 인간은 적응하자."라는 말은 너무 애처롭다. 과학은 발전할 수밖에 없고 끝없이 창조하고 개발하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한다. 이 발전이 인간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그 발전에 인간이 적응해 나가는 삶은 얼마나 비참할까. 선택해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요한 것들로만 허용하고, 모든 발전을 다 수용하지 않기로. 그런데 모든 필요가 수렴될 수 있을까? 결국은 슈퍼리치들의 의지대로 세상은 끌려갈 것인가. 결국 대다수의 세계인들은 적응할 뿐인가. 적응하다가 물들어 결국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이 미래일까? 이건 좀 지나친 회의적 생각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미래로의 속도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아주아주 느린 버튼을 선택하고 싶다. 인간에게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종종 과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고 느낀다. 더 좋은 제품들이 출시되고 새로운 기능을 탑재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이 신선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좀처럼 그것을 쉽게 내 삶에 들이지 못한다. 이런 저항감은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성향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 성향 탓을 해서라도 나는 느리게 가고 싶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보다 더 고민 없이 대부분의 디지털 혁명의 내용들과 실제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미 아이들은 모든 화면을 보면 손을 대고 터치하거나 페이지를 넘기려는 시도를 한다. 그것이 당연히 가능한 세상에서 아이들은 살고 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세대는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혁명과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어떤 것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활용하게 해주며 어떤 것을 아이들이 절제하고 가능하면 사용하지 못하게 할지를 지금 어른인 우리 세대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자녀에 대한 디지털 혁명의 long-term follow-up 결과는 아직 없다. 혁명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도 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아이들은 또 다른 새로운 것들에 노출된다. 결국 부모의 선택에 달렸다.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 우리 세대는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고민에 대해서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의 부모 세대는 우리에게 그런 것들에 대해 의논할 필요가 없었다. 새로 나오는 모든 것을 가능한 대로 배우라고 했고, 그것이 실제로 우리에게 유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세대들에게 지금 이 디지털 혁명의 부산물들, 혹은 열매들이 일부 해로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도 하지만, 차세대인 우리 자녀들이 마주할 세상을 미리 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을 전해주는 책이어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기본서로 이 책을 모든 부모에게 추천하고 싶다.
The Well-beloved
인간이 추구하는 편리함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