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야피, 라우드 알 라야힌-
대학시절, 내가 좋아하던 동생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 제목을 그때 나는 처음 보았고, 제목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동생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은 시기이고, 또 무언가 직면하여 그것을 헤쳐나가고 싶은 시기인가 하고 추측했을 뿐이다. 굳이 묻지 않았던 건, 내 마음이 바쁘고 힘든 시간이었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책의 제목이 지금도 이렇게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당시의 내가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의 인생에 대한 고민은 늘 막연했다. 잡히지 않는 것 같은 막연한 어떤 생각이 나를 둘러싸는 것 같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던 순간이 있었다.
이 책은 기억을 잊고 싶은 사람들과 기억을 붙잡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한없이 외로운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은 열 네 살인 열 살의 모모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프랑스 벨빌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7층에 사는 로자 아줌마와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성장소설이지만, 청소년들에게 쉽게 추천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게감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무게감은 어두움이고 깊은 슬픔에서 나온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모모가 자신이 사랑받고 싶은 그 사랑으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해내는 이야기이다. 사랑을 갈급해하는 영혼들 가운데서 허기진 그 가슴으로 사랑을 해나가는 한 남자 아이의 이야기다.
아픔을 동반하는 두려움과 불안에 대하여
사랑받고 싶은 한 사람, 모모. 사랑받지 못해서 아프고 사랑받지 못해서 불안하다. 자신이 사는 곳도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기에 가장 사랑하는 개를 더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오백 프랑에 팔아버리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안심하세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절대로요."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모모는 울음으로 아픔을 견디고 불안을 달랬다. 혼자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극심한 것이어서 죽은 로자 아줌마 곁에서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낫지 않을 것 같은 아픔, 세상에 낫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적인 생각들이 모모를 지배한다. 모모가 죽음에 대해 그렇게 담담하게 반응하고 오히려 죽음으로 인해 안전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누군가가 죽은 이후에는 더이상 그 사람에게 버림받을 것 같은 불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독한 외로움은 분노와 복수를 부르고
모모가 선택한 외로움이 아니었다. 누군가처럼 평범하게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살고 사랑받으며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야했을 한 아이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버림받았다. 모모가 자신이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마 로자 아줌마와 자기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한 후가 아니었을까. 그 두 사람 다 아무 것도,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밀 할아버지의 말 "모하메드,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 자신 뿐이란다."처럼, 모모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 외에는 자신에 대한 증거가 없는 것 같은 슬픈 외로움을 경험한다. 마땅히 누려야할 유년기의 행복은 그에게 사치처럼 느껴진다.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항아리로 인해 모모는 목마르다. 그리고 분노한다. 이러한 분노는 복수를 꿈꾸게 한다. 언젠가는 세상을 파괴하는 테러리스트가 되어 '쉽지 않은 걸 요구'해야겠다고. 당연히 받아야할 그 사랑을 받지 못한 나이니, 세상은 나에게 쉽지 않은 그 어떤 것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모모는 힘이 센 사람이 되고 싶다. 사실은 지독히도 사랑받고 싶어서.
나를 봐주세요. 나는 당신의 중요한 한 사람이고 싶어요.
주목받고 싶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은 마음은 모모의 절망 때문에 시작된다. 엄마의 부재에 대해 인식하게 된 후로, 모모는 관심을 끌기 위해 여기저기 똥을 싸대고, 도둑질을 한다. "나를 봐주세요. 어떤 시선도 좋아요. 내가 존재함을 당신의 시선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런 울부짖음같은 행동들이 어린 모모에게서는 생존을 건 치열함을 내포하고 있다. 나딘 아줌마에게 갔을 때, 쉴 새 없이 말하던 모모는 그녀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미소 짓고 있고, 자신이 중요한 인물임을 느끼게 해주는 그 황홀함 속에 젖어든다. 하지만, 독점하고 싶은 그 사랑이 사실은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나딘 아줌마의 자녀들)의 소유임을 알았을 때, 모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려나간다. '어차피'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 누구에게도 이젠 단 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은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인 로자 아줌마에게로 발걸음을 돌린다.
있는 모습 그대로,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그런 사랑이 있다면
로자 아줌마가 자신을 돌보는 것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매월 말 우편환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순간-자신을 키우는 건 돈을 지불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모모는 충격을 받고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조건없는 사랑은 없었다. 아무 대가를 받지 않고도 주는 사랑이 고팠던 모모에게, 나딘 아줌마와의 만남은 어떤 희망을 보여준다. 녹음실에서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면서 모든 것이 이전 것으로 순차적으로 바뀌어나간다. 뒤로 돌아간다는 것이 희망이다. 지금이 너무 힘겨우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어느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모모는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아무런 경험도 못한 사람처럼 평범하게 사랑받는 인생을 향해서.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기 위한 처연한 몸부림
"내가 아줌마를 버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내가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라구요." 로자 아줌마의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다짐한다. 떠나지 않겠다고. 이것은 자신을 버린 부모처럼 되지 않으려는 내적 강요다. 나는 버림받았지만, 나를 버린 나쁜 사람들처럼 나는 되지 않을거라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를 버리지 말고 내 곁에 남아달라는 사정이다. 로자아줌마의 죽음 후에도 그녀를 떠나지 못하고 옆에서 지키고 있는 모모는 '아주 죽어버리도록 더 아프려고' 애썼다. 아팠다는 표현보다 더 강력한 '죽어버리도록 더 아프려고 애썼다'는 표현에 눈물이 고였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 사람이 사랑받고 있었음을 느끼게 해주려는 강렬하고도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것은 이제 혼자남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향한 위로이며, 혼자 남은 자신을 향한 울음이었다. 아무도 없는 밖에 나갈 수가 없는 모모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권이었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혹독한 아픔이 찾아온다. 이 책을 읽으며 고인 눈물로 시야가 흐려지고, 가슴이 아리고, 내 사소한 고민들이 먼지처럼 흩어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열 네 살의 모모가 겪은 이 모든 일들 앞에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그에게 해줄 수 있을까. 모모는 우리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모모는 자신이 얻은 답을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남기고 있다.
사랑해야 한다.
하밀 할아버지에게 처음엔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고 '받는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모모는 책의 거의 마지막 즈음에는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고 묻고 있다. '주는 사랑'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받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주는 사랑'까지 확대된 것이다. 주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사랑해야 한다.",,, 받는 사랑의 결핍을 주는 사랑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사실 사랑을 받고 싶지만, 받는 사랑만을 기다리기엔 삶이 고되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나는 마지막 모모의 한 마디에서 그를 억압했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의 껍질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듣는다. '사랑해야 한다'는 표현은 의무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제 나는 사랑할 것이다'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느껴졌기에.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사랑해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도 남아서 내 영혼을 살릴 것, 그것은 사랑이므로.
The Well-beloved
결국 사랑만 남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