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돋우는 달콤한 디저트, 미술의 세계로
그림책은 디저트다. 미술 작품을 설명해주고 작가의 감상을 쓰거나, 아주 쉬운 말로 천천히 안내를 해주는 그림책은 디저트 중에서도 가장 예쁘고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하는 달콤한 디저트다. 한동안 문학작품이나 지식 서적들만 보다 보면, 어김없이 이런 디저트가 필요한 때가 온다. 이런 디저트는 책장에 한두 권 미리 사다가 꽂아두는데, 이번에는 전에 사 둔 디저트 그림책들에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아 서점을 어슬렁거리다가 내가 좋아하는 분홍빛에 그림도 상큼하며(?!)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바로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어쨌든 재미있기 때문에 미술작품을 보는 것이고,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 물론이다.) 재미있으려고 이런 책을 읽기 때문에 내 마음을 읽어주는 제목이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이 책의 표지가 핑크이기 때문에 이 책을 샀는지도 모른다. 최근 2년 동안 나는 어렸을 때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핑크앓이' 중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두가 다 한 번쯤은 본 작품들이나 전에 이미 여러 번 보았던 보는 작품들보다 새로운 어떤 작품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런 유의 책을 산다. 내가 몰랐던 사실이나 정보들을 얻으면 닫혔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기분이 들어 아주 흡족스럽다. 익숙하게 느껴지는 어떤 작가의 전혀 생소한 작품을 만나는 것은 탄광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느낌 같아-무엇을 캐내려고 탄광에 들어간 일도 없고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느낌도 실제로 느껴본 적은 없지만- 책을 읽다가 심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듯 두근거리는 일도 더러 있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의미 있는 순간들을 여러 번 경험하게 해준 책이다.
1848년 영국에서 일어난 화풍이라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에 대한 내용이나, '소박파'(나이브 아트, Naive art)라는 생소한 내용들은 매우 신선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어떤 화풍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이 봄에 어울리는 그림을 찾으려면 어떤 화풍의 어떤 작가를 찾아보면 되겠구나 하는 아이디어도 얻었다. 칸딘스키가 변호사요 법학교수였고, 모네의 <건초더미>를 본 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영국의 거리 예술가 뱅크시나 '나쁜 남자'로 불리는 제프 쿤스, 미국의 대표적 여성 화가요 '꽃과 사막의 화가'로 불리는 오키프의 작품도 처음 만났다. 상징주의 화가인 와츠의 <희망>을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후 그 작품이 더 유명해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아는 그 밀레가 <자, 입을 벌려요;음식을 주다>와 같은 귀엽고 소박하고 즐거운 생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과 바벨탑을 그렸던 브뤼헐의 <꽃 부케>라는 작품을 보며 그가 꽃을 이렇게 멋지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1817년에 태어나 1904년에 사망한 조지 프레데릭 와츠의 <희망>을 오래 바라보았다. 감성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을 하며, 주관성과 극적인 분위기를 그려냈던 상징주의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은 그의 작품을 보며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를 생각했다. "단 하나의 코드로라도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라고 했다는 와츠의 말이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언젠가 우리 둘째 딸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 첼로 줄이 공연 중에 끊어지면 어떡해요?" 나는 그 질문에 한 바이올린 연주자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현이 모두 끊어지고 하나가 남을 때까지 그 곡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연주했다는 이야기를. 감동을 주는 것은 모든 것을 갖춘 상태에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이 가진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단 한 줄로도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연주자가 누군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 희망을 다룰 용기를 가진 자가, 그 어떤 상황에도 헤쳐나갈 힘을 예비한 자가 그 한 줄을 가질 수 있다. 그 한 줄로도 노래할 수 있다.
브뤼헐의 꽃병에 꽂힌 수많은 꽃들을 바라보다가, 꽃을 그리고 싶어졌다. 봄이 왔고, 오늘 잠시 내 주위를 감싼 맑은 공기를 만끽하고 싶어 차창을 열고 달리는 동안 나는 이미 활짝 피어버린 목련을 보았다. 봄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전에 마음이 또 분홍빛이 되어버렸다. 2년 전부터 내 마음은 행복해지면 여지없이 분홍빛이다. 올봄에는 캔버스에 꽃을 그려볼까? 나만의 꽃을. 문득 하얗게 비어있는 우리 집의 한쪽 벽면이 나를 보고 싱긋하는 것 같다. 그림을 걸어주어야 할 때가 왔다. 내 마음을 문득문득 분홍빛으로 물들일 그림 하나.
The Well-beloved
어쨌든 그림은 재밌다!
p.s. 요즘은 수채화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