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흰_한강

하얀 기억에 대하여

by Jianna Kwon

몇 주 전쯤 책 소개를 받고 바로 읽고 싶어졌던 책이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던 한강 작가가 쓴 책이기에 더 궁금했다. 사실 나는 <채식주의자>를 읽지 않았었다. 국제적인 상을 받았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서라도 읽어봐야 했을 그 책이 왠지 어려웠다. 어딘가에서 책 리뷰를 보았는지, 아니면 책을 소개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그 내용이 어떠한지에 대해 알고 난 뒤로는 그 책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일과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가볍게 느껴졌다. 책의 분량이 얇기도 했고 에세이 같은 서술이 편하게 느껴졌으며,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흰'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니 그렇게 쉽게 손을 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한강의 기억 속 '흰' 것들과 관계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하얀 문, 달떡, 초, 입김, 각설탕, 불빛, 흰 돌, 백발, 고요 등 누구에게나 선명한 '하얀'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그녀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 흐르는 이 책의 모티프가 되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작가 한강에게는 이미 죽어버린 언니가 있었다고 한다. 그 어머니에겐 첫 딸아이였을 그 아이의 영혼은 태어난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멀리 떠나버렸다. 어머니가 수없이 기억하고 이야기했던 아픈 기억이 작가의 뇌리에도 박혔으리라. 하얀 천에 꼭 감싸인 갓 태어난 아기인 언니에 대한, 시각적으로는 만나지 못했으나 이미 정서적으로는 수없이 만난 그 언니에 대한 감각들이 흰색으로 펼쳐진다. 그렇기에 이 책은 '흰' 것들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고, 구심점을 가지고 모여드는 소설의 줄거리를 담은 책이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엄마가 죽어가는 딸에게 젖을 물리며, 수없이 눈물로 말했을 애절한 비명 같고 주문 같은 저 짧은 두 문장이 책 속에 흐른다. 하지만, 저 말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죽음이라기보다 생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거라는 가정으로 삶을 짓누른다. 첫 딸아이를 잃은 엄마는 이듬해 두 번째로 사내 아기를 또 임신했으나 조산했고 그 아기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죽는다. 이렇게 두 생명들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엄마는 삼 년 후, 드디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글을 쓰는 작가를 출산했고 사 년 후에는 남동생까지 낳았다. 이런 상황을 그녀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엄마가 임종전까지 어루만졌던 그 사랑하던 두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까, 하고. 그 두 아이들이 이 생을 숨으로 살아내고 있다면, 나는 엄마에게 없었을 것이라고.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언니)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고,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고. 언니의 부재는 내 삶이 시작된 필연적인 원인이 된다는 생각에 미친다. 그러니 어쩌면 첫 딸아이의 죽음 앞에서 수없이 내뱉었던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는 엄마의 말은 나(작가)에게는 슬픈 말이다. 그 엄마의 바람이 이루어졌다면 나는 없었을 것이므로.

언니의 생과 작가의 생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작가도, 나도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는 누구라도 관계로써 연관지어 생각할 때가 있으니 그녀의 글이 와닿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 있음'이 '죽어 버린' 누군가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못 견디도록 온 삶을 짓누르는 고통으로 남는다는 것은 그녀의 다른 소설(예를 들어, <<소년이 온다>>)에서도 끊임없이 글의 밑바닥을 흐른다. 나의 삶이 빚진 것이 되는 인생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누군가는 누리지 못했던 그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인생을 휘감으면, 심지어 내가 빼앗은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된다면 얼마나 아프고 슬플까.

하얀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이 책을 읽어서인지, 나도 죽음과 관련된 흰색들이 떠올랐다. 가슴이 조이듯 아려오기도 했던 시간을 이 책을 들고 읽으며 곱게 추억하고 다시 흘려보냈다. 내 나이 일곱 살 적, 다섯 살인 동생의 마지막 눈빛을 마주했던 그날에 나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하얗고 번뜩거리는 하얀 커튼을 걷었었다. 맑고 밝은 어떤 날에 피아노 가방을 달랑거리며 들고 돌아온 내 앞에 있던 그 커튼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었다. 그리고 바라보았던 그것은 아침까지 뽀얀 살빛과 순수하고도 촉촉한 눈빛을 가진 아픈 동생의 몸이었다. 이미 염을 끝낸 그 몸은 관에 들어갈 순서만 남긴 채, 사랑하던 사람들이 드릴 예배의식 앞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하얀 붕대 같은 것으로 감긴 그 온몸과 그 얼굴에 있던 잎사귀 같은 것을 얼핏 보았다. 어린 나이에 두려운 생각이 들어 바로 엄마 무릎으로 뛰어갔고 나는 다시는 그 거대한 하얀 커튼 근처로 가지 않았다. 5년을 참 잘 견디고 떠난 나의 작은 동생은 나에겐 하얀 빛이었고, 그 동생이 떠난 뒤에 아빠의 일을 도우시던 할머니의 꿈에 나타난 동생은 여전히 빛 속에서 하얀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눈부시게 흰빛이었다. 또 다른 기억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던 날의 기억이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렇게 부풀릴 수 없을 것 같은 순백의 망사 스카프를 목에 매어 리본을 봉긋하게 세운 그날이었다. 학사모를 쓰고, 검은 가운을 입은 그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남편, 친척들도 함께였다. 아직 봄기운이 있을 리 없는 2월 중순을 나는 봄으로 기억한다. 그 하늘하늘하고 투명하기까지 한 하얀 스카프 리본이 그러했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축하하며, 어디로든 나를 옮겨줄 수 있을 것처럼 가볍게 공기로 가득 채워진 그 리본이 내 마음을 봄으로 만들었었다. 방으로 들어가 동기들과 함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였다. 이젠 하얀 가운을 입고 숭고한 마음으로 생명을 사랑하며 헌신하겠노라 마음을 먹었던 그 순간의 감동과 다짐을 기억한다.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된 다음 달에 아버지는 말기 암을 진단받으셨다. 세 달 만에 곁을 영영 떠나버린 나의 한 분뿐인 아버지를 위해 나는 그것만 있으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 것처럼 생명을 원했고, 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이 내 안에서 움텄다. 삶과 죽음은 가까운 것이어서, 어느 때 그것이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굳이 그 둘을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도, 혹은 억지로 가까이 닿아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삶에서 겸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언가는 죽음이며, 죽음 앞에서 그것을 허무하게 만들지 않을 것은 그동안 살아온 삶임을 잊지 않는 인생을 살려 할 뿐이다.

한강의 소설 세 권에 대해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삶의 아픔들을, 내가 겪지 않은 고통들을 마주하는 일을 피하지 않고 싶어서 이 글들을 쓰기로 했다. 감정의 폭을 넓히는 것이, 때로는 나를 안전하고 포근하게 감싸주었던 천 조각을 찢어서 벌리는 듯 느껴지더라도, 단 한 사람을 더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위로의 눈물을 함께 흘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The Well-beloved
나에게 '흰'은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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