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경복궁, 자금성,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이야기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벚꽃을 밀어내고 나온 이파리들로 벚나무들이 제법 푸릇해졌다. 도로를 달리면 차창으로 스쳐 뒤로 밀려가는 나무들, 그 잎의 색깔이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생기로운 날이다. 슬프게도 이 나라는 미세먼지가 없는 날을 찾아 나들이를 가야 하는 땅이 되어버렸고, 날씨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미세먼지의 농도 추이도 확인하여 집 밖을 나서야 한다. 하늘이 푸르르고, 시야가 멍하지 않은 날에는 무조건 나가서 봄볕을 쐐야 한다는 조바심에, 마음이' 나가자고, 나가자고' 보채는 것을 달래야 하는 날도 있다. 이제 봄날의 나들이는 뛰쳐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 무조건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울에서 싱그러움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나무들이 사방을 둘러싼 공원이나 숲, 젊은 호흡들이 가득한 대학가나 카페거리, 그리고 아주 오래된 우리 고궁이나 문화유적지를 꼽고 싶다. 그중에서 예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은 내게 아주 특별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답답하거나 팍팍한 날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듯한 고궁이나 그 곁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여유와 마음의 생기를 준다. 서문이 길었다. 이젠 고 구본준 기자의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은 세상의 큰 집들에 대해서 쓰고 있다. 현대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뻗은 큰 집들이 아니라, 오래되고 넓어 큰집들이다. 이 책은 종묘, 경복궁, 자금성, 파르테논 신전을 중심으로 오래되고 거대하며 소중한 유산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축학적인 면에서 쓰고 있다.
기둥과 길이
모든 위대하고 특별한 건물들은 높거나 길거나 둘 중에 하나다. 하지만 예전에는 높게 짓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당시엔 엘리베이터도 없으니 실용성 면에서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바벨탑처럼 인간의 하늘로 오르고자 하는 탐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용도에 맞게 큰 집을 지을 때에는 긴 집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긴 건축을 위해서는 기둥을 줄지어 세우는 디자인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고, 이로 인해 거대한 건물엔 '줄기둥'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디자인은 현대에도 거대함을 느끼게 하는 건축물에 자주 응용되고 있다.
이러한 줄기둥 형태가 반원형으로 변주된 것이 베르니니에 의해 건축된 산피에트로 광장이다. 단순성에 의한 놀라운 디자인을 보여준다. 그 기둥들은 광장을 두 팔로 품은 듯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줄기둥 건축이 있다. 바로 '종묘'이다. 종묘의 정전은 한국 건축가들이 꼽는 가장 위대한 우리 건축물로써, 길이 101m로 한국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이다. 특별한 점은 오랫동안 증개축하여 지어진, 시간과 건물이 함께 성장해나가는 방식을 택한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에 따라 자라난 건축물인 종묘는 전통과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궁전과 극장
궁전은 거대한 극장이라고 저자는 썼다. 다름 아닌 '권력의 극장'이라고. 베르사유궁전도, 자금성도 그 거대함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권력이 얼마나 큰가에 대한 것이고, 그 거대함의 목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앞에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궁전은 '지배자인 왕과 황제가 주연배우가 되고, 신하와 백성이 관객이 되는 극장'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지독하게 큰 궁전들은 그만큼 탐욕과 권력욕이 극도로 치달은 지배자의 끈질긴 착취의 증거다. 그 거대한 크기들은 백성으로부터 노동력과 시간, 자유를 헤아릴 수 없이 빼앗았음을 보여주는 슬픈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이 자금성이나 경복궁에 비해 아담하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백성들에 대해 너그러웠던 우리나라의 지배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이유가 된다.
자금성과 경복궁
자금성은 가로 760m, 세로 960m의 크기이고, 경복궁은 가로 500m, 세로 700m의 크기이다. 생각보다 엄청난 차이는 아니다. 경복궁이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궁전이라고 하니, 경복궁을 다시 볼 일이다. 여기서 더 생각해볼 것은 서울에는 경복궁 외에도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면적을 합치면 자금성의 두 배가 된다니 크기 면에서는 부족할 것도 없겠다. 게다가 경복궁은 1395년에 지어진 것으로, 1420년에 지어진 자금성보다 이전에 지어졌다. 자금성이 위압감을 주고, 공간 속에 갇혀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라면, 경복궁은 훨씬 낮은 담과 여유를 품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저 보면서 입을 떡 벌릴 두꺼운 담으로 둘러싸인 곳이 아닌 경복궁에서는 느긋하게 앉아서 하늘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느낄 한가로움이 있는 것이다.
목조건축과 석조건축
유럽의 건축물들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것들도 있다. 이는 그것이 석조건축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양에서는 1000년을 버티기도 어려운 목조건축이 대세였다. 목조건축은 불에 타기도 쉬워, 수많은 전쟁과 환란 속에서 거친 역사를 고스란히 겪는다. 순식간에 없어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함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정성으로 건물을 짓고 단청을 채색하고 더 세심하게 관리해왔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 존재한 어떤 정신이상자로 인해 창경궁과 숭례문의 일부를 눈앞에서 상실하는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던 일이 있었다. 이 일을 떠올릴 때 가장 속상한 것이 우리의 건축물의 소재이다. 하지만 목조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숨소리와 바람소리를 우리는 안다. 목조건축에서 정겹게 들을 수 있는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의 소리와 기둥을 만질 때의 그 나무결의 따스함을 우리는 안다. 이제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어떻게 잘 보존하고 유지하며, 선조들의 건축 정신을 문화유산을 통해 지속해서 후세까지 남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다.
종묘에 가야겠다. 어떤 맑고 밝고 푸르른 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종묘를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건축학적 의미들을 깨닫게 해준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The Well-beloved
지나가면서 위치로만 인지했던 종묘를 눈앞에 마주할 그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