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이야기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아 캘린더를 봤더니 일주일 만이다. 글쓰기 방학 기간을 갖고 싶었고, 글 쓰는 것보다 생각하는 일에 몰두하고 싶었다. 내 삶의 규칙성 속에 들어와버린 글쓰기의 움직임을 좀 유연하게 하고 싶었다. 책을 읽었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쌓아두고 읽는 일은 내게 늘 배부른 행복 같은 것이어서 알고 싶은 것들과 알아가는 것들과 이미 알아버린 것들 속에서 지냈다. 밀려버린 지난 북리뷰들은 그냥 덮어두자. 그리고 지금부터도 쓰고 싶은 리뷰만 쓰자고. 좀 더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다듬은 글을 올려보자고 생각하는데 생각처럼 될는지는 늘 그렇듯 알 수 없다. 성실함과 자유함의 균형 속에서 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마는.
'자코메티 전에 가야겠다.' 생각한 건 정말 불현듯이었다. 주말마다 딸의 미술수업을 위해서 예술의 전당에 가면서도 자코메티 전에 큰 흥미가 없었다. 사실 자코메티를 잘 몰랐다.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에서는 큰 공감을 하기 어렵다는 몇 번의 경험에 따른 편견으로 인해 티케팅을 쉬이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자코메티 전에 가고 싶었을까? 첫째는 2주일 후면 끝날 전시에 대한 조바심 나는 마음이었고, 둘째는 '흔치 않은, 놓치지 않아야 할 전시'라는 다른 블로그의 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술관에 가는 것은 늘 나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그 어떤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는 것보다 신선한 공기로 나를 리프레시 해주니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다이어리에 갈 수 있는 날을 체크해두고 책 한 권을 주문했다.
책, <자코메티, 도전적인 조각상>을 읽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중 하나인 <자코메티, 도전적인 조각상>을 구입했다. 그가 누군지, 무엇을 했는지는 미리 알아두고 싶었다. 금세 읽힌 책이지만, 매우 깊은 한 인생의 우물 속에 푹 잠겼다 나온 느낌이었다. 예술가 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한 사람을 만났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는, 소박해 보이면서도 진지하고 진실되어 보였다. 괴짜 예술가 같은 느낌보다 철학자 같은 느낌의 예술가였다. 후기 인상파 화가인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미술에 흠뻑 젖어 살 수 있는 환경 가운데서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성장했다. 1901년에 스위스에서 태어나 1966년까지 사는 그의 인생 중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이 있었다. 당시는 초현실주의가 일어서고 있었고, 당시 예술 세계의 중심인 파리로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떠났던 그도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31년 조각상 안에 실제적 움직임을 도입한 최초의 조각가 중 한 명으로 <매달린 공>이라는 작품을 통해 초현실주의 조각가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초현실주의 그룹에 대한 회의로 그들 무리에서 떠나 자유를 추구하고 싶어 했고, 초현실주의 집단에 속하기를 거부했다. 그리하여 그는 분류할 수 없는 조각가로서, 거칠고 강한 인상을 풍기는 다양한 크기의 입상과 흉상을 만드는 등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나갔다.
그에게 있었던 사람들 중 특히 기억해야 할 몇 사람이 있다면, 디에고, 아네트, 야나이하라, 카롤린, 로타르이다. 디에고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동생으로, 알베르토의 헌신적인 조수이면서 끊임없이 포즈를 취한 충실한 모델이었다. 그는 석고상 뼈대를 세우고 주형을 만들고 청동에 녹청을 입히는 일을 하며 평생 형 곁에 있었다. 아네트는 22세 연하의 자코메티의 아내이다. 스위스에서 만난 그들은 1949년 결혼하였고, 자코메티는 그녀는 "내가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여자"라고 하였다. 시적이고 환상적인 신선함을 간직했던 여자로, 자코메티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하고, 아틀리에 관리 및 정돈을 했으며, 남편의 글을 타자로 치거나, 전시회 팸플릿 사진을 선택하는 등 개인비서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야나이하라는 일본인으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갔다가 자코메티를 만난다. 1956년부터 수년간 자코메티의 모델을 했으며, 자코메티가 푹 빠져들었고 편하게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그는 인내심이 강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남자였다. 카롤린은 37세 연하의 여인으로, 자코메티가 술집에서 만난 매춘부였다. 자코메티는 그녀의 시선에 단숨에 사로잡혔고, 그녀를 모델 삼을 뿐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아끼는 관계에까지 이른다. 로타르는 사진작가였으며, 그가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되었을 때에 자코메티에게 찾아왔다. 그는 자코메티의 유작의 모델이 되었던 마지막 남자 모델이었다.
프랑시스 퐁즈에 따르면 자코메티는 모든 조각상을 풍경처럼 다뤘다고 한다. 그는 조각할 대상을 인물 그 자체만으로서가 아니라 공간과 함께 인식했다. 그는 허공까지 빚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허공을 예리하게 인식하려고 했고, 무한하고도 두려운 허공과 맞서는 마음으로 조각을 했다. 그는 1933년의 글에 이렇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했다. "인간의 얼굴은 그 어떤 얼굴도, 심지어 내가 수없이 봐왔던 얼굴조차도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 (내 동생 디에고는) 나를 위해 수천 번도 넘게 포즈를 취했지만, 동생이 포즈를 취하는 순간부터 그 얼굴은 내 동생이 아닌 낯선 얼굴이 되고 만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보기 위해서 그를 모델로 세우고 싶다."라고 했다. 그는 몰입했고 철저히 작품과 하나 되어 집중하여 들어갔다. 그는 천재이면서 예술가였다. 그는 말년까지 어딘가에 쌓여있을 엄청난 액수의 재산도 그를 바꿀 수 없게 했던 진정한 예술가였다. 그는 인생무상에 대해 일찍 깨달았다. 청년 시절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던 그는 삶과 죽음이 아주 가까이 맞닿아있다는 깨달음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평생 안고 살아갔다. 그리하여 그는 불변하는 것들을 열렬히 추구했다. 똑같은 친구들을 만나고, 똑같은 동네에 살며, 똑같은 삶의 습관들로 살았다. 무엇보다 그 어떤 것도 예술에 대한 그의 사랑과 집념을 바꾸어놓을 수 없었다.
예술의전당,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에 가다
도슨트의 설명을 꼭 들으라 했다. 평일 낮 11시 반이었건만, 한가할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무려 40여 명이나 될법한 많은 무리가 도슨트 주위를 둘러쌌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앞과 옆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일대일로 듣는 것 같은 몰입감을 느끼게 했던 도슨트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책에서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이사벨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일곱 평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 아내 아네트에 대한 이야기, 야나이하라에 대한 이야기, 또한 아네트와 야나이하라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카롤린과 자코메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코메티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작품은 <로타르> 1,2,3, 그리고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전시되어 있던 이 작품들은 그의 걸작들이고, 특히 <걸어가는 사람>과 <로타르 3>의 원본 석고상이 이 전시에 있다는 건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했다. 도슨트는 <로타르 3>의 원본 석고상 앞에서 가능하면 오랜 시간 마주하고 바라보며 감상하라고 하였고, <걸어가는 사람>을 사진만으로 남기지 말고 느껴보라고 했다. 그리하여 <로타르 3> 앞에 섰다.
정면으로 <로타르 3> 앞에 섰다. 먼저 눈을 바라보고, 깎아지른 듯 높은 콧대를 훑고 두꺼운 입술을 바라보았다. 얇고 긴 얼굴의 광대뼈와 턱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목 주위에서 느껴지는 자코메티의 손길에 잠시 눈이 멈췄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려 튀어나온 흉골을 따라 불룩 튀어나온 알 수 없는 배의 돌출이 조금 귀엽다고 느꼈다. 다시 흉골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로타르 3>의 푹 꺼진 늑골이 있는 가슴팍에 시선이 닿은 순간 나는 울컥했다. 하염없이 함몰해있는 것 같은 가슴.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가슴. 뼈도 이미 으스러진 것 같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것 같은 그 몸뚱이가 슬펐다. 가슴이 아리도록 아팠다. 눈물이 고인다는 생각이 든 순간 다시 <로타르 3>의 눈과 내 눈을 마주했다. 공허하다고 느꼈던 그 눈이 "괜찮아. 잘 버텨왔어"라고 스스로에게, 혹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강인하게 꼭 다문 입술과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조각상의 얼굴이 한없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졌다. 그 조각상이 미소 짓도록 하고 싶은 마음보다, 그 조각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모습 그대로, 삶의 풍파를 뚫고 견디어낸 단단한 그 모습, 상처로 인해 뭉그러진 그 가슴팍까지도 그대로 괜찮다고, 아름답다고 내 가슴으로 말한 후에야 나는 돌아설 수 있었다.
묵상의 방이라 했다. 들어가면 단 하나의 작품,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 유일한 조명을 받고 굳건히 서있는, 혹은 걷고 있는 뼈만 앙상한 한 사람이 있었다. 자코메티는 조각들이 아주 가늘어진 이유가 인간이 걸어 다닐 때면 몸무게의 존재를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품 주위를 돌면서 작품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울퉁불퉁하여 작품에서 가벼움을 느끼기보다 병약함을 느꼈다. 다시 한 바퀴 돌 때 나는 병약함보다는 강인함을 느꼈다. 커다란 두 발로 딛고 선 한 사람이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의 옆을 함께 걷기도 하고, 그의 뒤에서 따라 걷기도 하고, 그와 반대 방향으로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그의 앞서가서 그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의 앞에 서서 바라본 작품 속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평온함이었다. 그 어떤 분노와 열정, 슬픔과 외로움도 없는, 심지어 어떤 희망도 없는 것 같은 그저 평온함. 그 눈빛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면 도전적이라 느꼈을 것이고, 옆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삶에 대한 아쉬움으로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눈빛은 그저 평온함이었다. 측면을 들어 바라보는 것 같이 느껴졌던 그 눈빛은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감내하겠다는 의지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겠다는 순종의 의미였다. 살아가는 일이 달가운가 여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걷는다. 걷는 것이 그의 일이고, 그것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이 감정과 생각들이 자코메티가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작품이 내게 주는 메타포를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자리인 작품이 가는 방향의 오른쪽 옆에 섰다. 옆에 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같이 가길 원하는지, 혼자 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는 그 옆얼굴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그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는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걷고 있을 때 옆에 늘 존재하는 한 분을 떠올렸다. 삶이 의미 있는 이유는 '함께'이기 때문이다. 함께 걷고, 함께 느끼고, 함께 나누고, 함께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걸어가는 사람>을 보며 나는 '함께'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혼자가 아닌 사람, 혼자가 아닌 인생. 언제까지나.
집으로, 다시 삶으로
전시관에서 나오는 길에 아트숍에서 도록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방울토마토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토마토 씨가 톡톡 입안을 채우는 느낌을 느끼며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나왔던 그 인생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하듯이 읽어보았다. 아주 오랜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한 사람의 인생 속에 머리끝까지 잠겼다가 나온 기분이 충만해졌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나는 이제야 그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The Well-beloved
황사가 몰려오고 있다. 바람아, 불어라!
불어서 서둘러 흘러가게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