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도시를 걷는 시간_김별아

표석으로 만나는 역사의 이야기

by Jianna Kwon

김별아 작가님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을 먼저 사서 책장에 꽂아두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점에 가서는 이 책을 보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조선 산책>의 연장선상에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단번에 집어 들었고, 미세먼지를 뚫고 이 도시를 산책하고 싶은 마음으로 책 속 봄나들이를 하였다. 마음은 이미 봄으로 가득 찼고, 햇빛의 농도도,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결도 이미 봄인데, 공기의 질만이 나의 발목을 붙든다. 아쉬운 봄이다. 참으로 아쉬운 봄.

이 책은 역사의 흔적, 그중에서도 서울의 표석(푯돌 혹은 표지석)을 따라 떠난 산책 이야기이며, 지금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볼 수는 없지만 분명 존재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로 남은 이야기들의 '자리(땅)' 위에서 풀어놓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책 속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들은 심심하고 딱딱하며 틀에 박힌 듯한 문구가 적힌 'OOO 터 표석'의 모습들뿐이지만, 소설가 김별아 님이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나를 그 자리의 수백 년 전 사건 속으로 고스란히 시간이동시켰다. 아주 낯선 이야기들도 있었고, 내가 상상하곤 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었고,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 장면의 속살 이야기도 있었다.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 쉽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조금 더 어렵지만 그것도 나름 쉽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으로-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을 방해하는 수많은 환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 책은 이렇게 역사 속의 어떤 사건을 연상하게 할 어떤 것도 없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가능하게 해준다.

서울에 이토록 많은 터 표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의 작가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수많은 터 표석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그 어떤 인식도 없이 바람의 흔적만을 남기고 떠났을 것이다. 엄마가 되고나서는 마음껏 한가로이 서울 시내를 거닐며 목적 없이 시간을 때우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시간을 꿈꿔 보았다. 터 표석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그 앞에 앉아서 그 장소의 이야기를 꿈처럼 풀어내기도 하고, 시간을 거스르더라도 장소를 통해 느껴지는 그 시대의 그 감정을 느끼고도 싶다. 언제쯤 가능할까 싶지만,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소망으로.

언제나 느끼지만
길 찾기는 참으로 이상스럽다.
찾기 전까지는 어려운데
찾고 나면 쉽다.



찾으려면 쉽지 않은 터 표석을 하나씩 찾아내어 가던 김별아 작가님의 이 깨달음이 가슴에 남는다. 우리 모두에게 처음인 그 길은 모두에게 참 찾기 어려운 길이다.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아무래도 돌아가는 것 같아 불안하고, 남들 다 가는 길이 맞는 것만 같아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도 없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나가고 나면 돌아보며 우리는 다시 그 길을 쉽게 가는 길을 깨닫게 된다. 지름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길을 찾는 과정과는 달리 인생은 다시 돌아가서 걸어올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길을 걸어올 사람에게 친절한 한 마디를 건네는 일이다. 그 한 마디를 받고 말고는 상대방의 일이지만, 알고 있는 사람으로 진심 어린 한 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일뿐이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을 향해 간다. 언젠가 끝날 유한한 삶의 길 위에서 살고 있다. 그 이후의 삶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처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이미 모든 길을 알고 계시는 한 분의 한 마디를 듣는 일이다. 물론 그 한 마디를 듣고 아니고는 각자의 자유다. 우리네 인생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은 참으로 이상스럽다. 찾기 전까지는 어려운데 알고 나면 사실은 아주 쉽고 짧은 길이다.



The Well-beloved
이상하다. 이번 주는.
화요일이 월요일 같고, 수요일이 목요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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