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의 판타지 속으로
[북카페] 토끼의 지혜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321
매일 10:00AM-11:00PM 연중무휴
1인 1음료 주문
평일저녁 6시 이후와 주말엔 주차 무료
햇살이 쏟아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지 피부가 따갑게 느껴졌다. 뜨거운 기운이 머리 위와 얼굴을 덮으니, 이제 여름이구나 싶은 낮이었다. 시장기가 느껴지고 조용히 책도 읽고 싶은 점심시간에 찾은 곳은 지하철 7호선 논현역 근처의 북카페 ‘토끼의 지혜’였다. 카페의 실내만큼이나 커다란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과 체어가 햇빛을 가득 머금었다. 초록색의 기다란 어닝과 테라스 주위에 심긴 나무들이 푸르다.
마음을 읽어주는 곳
크로크 무슈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평대 위에 놓인 중고서적들을 둘러보았다. 벽마다 있는 높은 책장들에 꽂힌 책들은 모두 북카페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자유롭게 꺼내볼 수 있는 책들이고, 음료 주문하는 곳 앞에 있는 평대와 근처의 낮은 책장들의 책들은 중고서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오늘은 헌책을 한 권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들른 터라 나와 오늘 인연이 닿을 책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눈으로 책표지와 책등을 훑었다. 한동안 마음에 맞는 책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내 옆으로 음료 주문을 받으시던 분이 다가오셨다.
“소설을 찾으세요? 소설이라면 이쪽에 많지요.”
무심코 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그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따라 걸었다. 어떻게 아셨을까, 내가 소설에 더 마음이 쏠려 있다는 걸. 이 북카페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남았다. 내 마음을 읽어주는 곳.
그 책을 고른 이유
쪼그리고 앉아 낮은 책장에 얌전하게 꽂힌 책들의 제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었다. 고요히 선택을 기다리는 책들이 숨죽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을 탄 책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것 같아 좋다. 새 책을 살 때는 책장을 처음 넘기는 사람이 된 특별함과 인쇄소에서 나온 따끈한 책에서 느껴지는 뽀송함이 기분 좋다면, 중고서적을 살 때는 누군가에게 추억이 된 기억 하나를 소유한 책의 말없는 아련함이 느껴져서 좋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책등의 모서리를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짚어 살짝 당겨 꺼냈다. 엄지손가락으로 책장을 후루룩 넘기며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물든 오래된 책의 느낌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구겨지거나 낙서도 없었다. 책표지도 얼룩이 없었다. 헌책을 살 때 너덜거리는 책은 사지 않는다. 많이 읽어서 닳아버린 책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두고 함부로 대해서 헤져버린 책엔 왠지 마음이 닿질 않는다. 이 책은 누군가가 고운 손길로 소중하게 대했던 책 같았다. 아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읽은 후 다른 좋은 누군가에게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놓은 책 같았다.
그게 사랑이었을까?
책을 고르는 동안 크로크 무슈는 식어버렸다. 그래도 쫄깃한 치즈의 맛이 좋았다. 오물거리며 한 입 먹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킨 후 붉은 일인용 의자에 기대어 앉으니 흡족했다. 창밖의 푸르른 나무의 이파리를 내다보았다. 바람결에 흔들거리는 모습에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런데 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랑한 건 확실한데, 로테도 베르테르를 사랑한 걸까?”
“로테는 베르테르를 man이 아닌 human으로 생각한 것 같아. 일종의 우정이랄까?”
“교수님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들라고 하시는데, 글쎄... 근거랄 건... 그냥 느낌이 그런 거지.”
창가의 내 자리에서 제법 떨어진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일부러 듣자고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닌데도,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독서를 하며 침묵하고 있기에 그 둘의 대화가 또렷하게 들렸다. 북카페에서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니, 10대 소녀, 혹은 20대 초반의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마음이란 이렇게 쉽게 찾아올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이 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9년 전 이와 같은 제목의 영화를 봤었다. 브래드 피드의 연기와 스토리 자체가 주는 강렬함이 컸기에 그 영화를 잊을 수 없었다. 영화 자체의 러닝 타임도 길 뿐 아니라, 주인공 벤자민 버튼의 길고도 특별한 삶을 담고 있기에 이 영화의 원작은 당연히 장편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단편을 포함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이었다. 한 편의 희곡을 보는 것처럼 재밌게 읽히는 <낙타의 뒷부분>과 <자기와 핑크>, 거트루드 스타인이 말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삶의 일부분을 보여준 <젤리빈>, <노동절>, 황금만능주의의 허상과 허망함을 보여주는 <리츠 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 등 11개의 단편이 실려 있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단편은 영화와 비교해보자면,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근육도, 혈관도 없는 하얀 뼈대 같은 느낌이었다. 1860년 여름 로저 버튼 부부의 아기로 태어난 백발의 노인은 일흔 살의 아기였다. 젊은 버튼 씨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괴물 같아 보이는 늙은 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지고, 결국은 아기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는 것이 줄거리다. 영화를 볼 때와는 꽤 다른 배경과 상황인 원작을 읽으며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모성 혹은 부성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이 아니라 조건적인 것이 아닐까? 내 아기가 기괴한-사회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혹은 상상하지도 못할 상황에 처한-상황에 처한다 해도, 정말 뽀얀 아기를 사랑하듯 빛나는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질문이었다.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는 사랑에 대한 갈급함,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은 부모로부터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랑은 신으로부터만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신의 성품을 소유한 특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인 걸까 하고. 슬프게도 대다수의 부모의 사랑은 많은 부분 조건적일지 모른다. 모든 사랑을 조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번째 질문은 내 자녀에게 ‘아이다움’을 강요하지는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벤자민 버튼의 아버지 로저 버튼은 도무지 아이답지 않은 외모를 가진 아이 벤자민 버튼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아이다움을 강요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아이다움이자 부모 기준에서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아이다움이다. 벤자민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그 아이다움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그의 나이든 모습의 유년기는 그렇게 아이다움의 위장으로 살아진다. 십대가 된 두 딸들을 지금껏 키우며 아이들의 순수함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감동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감동했던 순간은 주로 타인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거나 세상물정을 모르는 태도를 취하거나 일반적인 통념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표현이나 언어를 사용할 때였다. 그 정도 나이에는 어떤 정도 수준의 순수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들이 아이들의 성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지 않도록 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모의 틀이 아이들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엄마,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인 것 같아요.”
가족들과 나란히 앉아 이 영화를 다시 본 후에 큰 딸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근데,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게 슬픈 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르다는 데서 슬픔이 오는 게 아닐까? 모든 사람이 노인으로 태어나서 아기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것이 과연 슬픈 걸까? 모두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혼자 거꾸로 가고 있다는 그 고독이 진짜 슬픔이 아닐까?”
“음... 엄마. 벤자민 버튼은 어쩌면 마지막엔 행복했을까요? 그렇게 되고 싶었던 아이의 모습이 결국 되잖아요. 마지막 순간에 행복했을까요?”
벤자민 버튼은 노인의 모습으로 살았던 어린 시절 내내 선망하던 아이의 모습으로 드디어 살게 된 말년에 행복했을까? 우리는 모두 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진 노인의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선망하며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벤자민 버튼은 어린 시절부터 어린이의 모습으로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그는 꿈을 이룬 걸까.
내가 세상 모두가 의식하지 못한 채 타고 있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있음에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덮었다.
2018. 6. 2. SAT.
The Well-belo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