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인 북스 'ARTISTS IN BOOKS'
[책미술관] 현대어린이책미술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 146번길 20
매일 10:00AM-7:00PM
월요일, 1월 1일, 추석 휴관
031.5170.3700
주차가능
관람료 : 6,000원 (만3세미만, 만65세이상 무료)
http://www.hmoka.org
두 딸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추어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매주 수요일은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곳에 나들이를 가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리는 날로 정해 다른 고정스케줄 없이 하교 후의 시간을 비워두고 있다. 날씨가 많이 더워진 탓에 이마 주위의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은 채 아이들이 빙긋이 웃으며 다가오는 모양새가 여름을 닮았다. 그날은 그림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설렘을 일으키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으로 나들이를 갔다.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가장 편한 동행자가 되어주는 두 딸들과 함께여서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림 + 글 = 책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미술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최초로 ‘책’을 주제로 어린이를 위한 미술전시와 교육을 하는 곳이다. 예술과 이야기를 모두 가진 그림책을 중심으로 전시를 진행하며, 아이들이 전시를 통해 그림책 이상의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김찬중 건축가가 작업한, 징검다리 모양으로 계단을 재미있게 표현한 ‘버블 스텝’은 2015년 9월 개관했을 때부터 이 미술관의 특징적인 이미지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었다.
전시는 5층과 6층에서 열린다. 5층에서 그림책 관련 전시를 관람 후에 ‘버블 스텝’을 통해 6층으로 올라가면 ‘열린 서재’가 있는데, 삼면이 온통 책장과 책으로 가득하고, 가운데 공간은 양쪽에서 올라오는 계단이 가운데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다. 아이들은 ‘열린 서재’의 편안한 빈백에 기대에 앉아 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책을 꺼내어 보며 책 속의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르며 놀이터처럼 놀기도 한다. ‘열린 서재’옆에는 6층 전시가 5층 전시에 이어 펼쳐진다. 온통 그림책의 바다이고 아이들의 책놀이터가 되는 곳이 바로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이다. 뿐만 아니라, 전시연계 교육프로그램과 작가워크숍, 교육프로그램 등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일정 교육비를 내면 아이들이 더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의 또 다른 매력이다.
지금은 ‘아티스트 인 북스(ARTISTS IN BOOKS)’ 전시 중
우리가 관람하게 된 전시는 ‘아티스트 인 북스’였다.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소개하고, 그 예술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는지를 탐색하며 실제로 따라해 볼 수 있도록 부스마다 다른 컨셉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르네 마그리트를 시작으로 이중섭, 프리다 칼로, 루이스 부르주아, 반고흐, 마티스, 피카소 등의 예술가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와 생애, 작품의 주제 및 기법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들에 대한 그림책이 한 권 이상 소개되어 있다. 어른인 나에게도 좋았던 점은, 그림책뿐 아니라, 함께 읽으면 좋은 도록이나 책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두 딸들보다 내가 훨씬 오랜 시간동안 전시 공간에 머물렀고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예술가 별로 놓인 많은 책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전시에 소개된 그림책들은 그 자체로 작품이었다. 예술가들의 표현기법을 그림작가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창조하되,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보였다. 또한 그 작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표현해내기 위해서 연구하고 고증하고 답사를 했다고 하니 그림책 한 장 한 장이 쉽게 넘겨지지가 않았다. 박수근 작가에 대한 책 <꿈꾸는 징검돌>의 김용철 작가는 양구 시냇가를 다니며 박수근 작가의 과거를 떠올리려 했고, 바바라 스톡은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았던 아를과 생-레미, 오베르를 답사하고 반 고흐가 살았던 시대에 대해 조사했다. 르네 마그리트에 대한 책 <꿈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가 클라스 베르플랑케는 르네 마그리트가 상상했던 것처럼 상상하되 자신만의 그림체로 그림을 그렸고, 크리스티나 아모데어 작가는 마티스의 ‘컷 아웃(cut-out)’기법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원작과 그림책을 본 아이라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예술가의 그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창조하고 싶은 욕구를 느낄 것 같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 예술가별로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하여 예술가의 표현기법을 체험해볼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이 있었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반 고흐의 색깔연구(color study)에 대한 설명과 직접 색깔연구를 해볼 수 있는 공간이 그 중에 하나였다. 고흐는 비싼 물감을 사용하기 전에 털실을 이용하여 색깔의 조화를 살폈다는 것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알았기에 신선했고, 직접 엽서 크기의 판 위에 풀과 털실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해 둔 공간을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파블로 피카소에 대한 전시 공간에는 이젤 양쪽에 다양한 모양과 각도로 입체적으로 설계된 거울이 세워져 있어서 이젤 앞에 앉아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여 그리며 ‘입체파’의 그림 속 시점의 다양성을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두었다. 이 외에도 마티스의 ‘컷아웃’ 작품을 따라해 볼 수 있도록 여러 모양과 색깔의 플라스틱 조각들을 LED 라이트테이블 위에서 이리저리 배치해가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게 해둔 것이라든지,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 알렉산더 칼더의 선을 확대해놓은 판 위에 체인으로 그 선과 같은 모양으로 놓아보게 하는 등의 활동공간이 있었다.
오늘 만난 특별한 예술가들
워낙 ‘위대한 예술가’로 불리는 사람들과 작품들, 그리고 그에 대한 그림책을 전시한 공간이었기에 대부분의 이름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고, 작품들도 보지 않아도 떠오를 만큼 낯익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감추어져있던 진주처럼 은밀하게 만난 예술가들이 있었으니, 두 사람, ‘비비안 마이어’와 ‘루이스 부르주아’이다. 이 두 사람은 이번 전시에서 프리다 칼로를 포함한 단 세 명의 여자 예술가 중 두 명이다.
‘비비안 마이어’(1926-2009)는 미국의 사진작가로, 거리의 인물과 풍경들, 특히 거울이나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비밀스럽게 혼자만이 작업하였고 공개적으로 활동하지도 않았지만, 2007년 존 말루프가 벼룩시장에서 그녀의 15만장의 필름이 담긴 상자를 사게 되어 그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생전에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운명과 필연은 거스를 수 없었나보다. <나는 비비안의 사진기>라는 그림책은 마이어의 카메라가 그녀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그림책이다. 카메라의 입장에서 그녀의 인생과 흔적들의 일부를 증언하는 방식이 신선했고, 사람의 사랑을 받고 그 따뜻한 손의 온기 속에 있던 카메라가 자기의 주인을 또 다른 따스한 시선으로 보는 것 같은 내용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찍은 셀프포트레이트들을 보았다. 세상의 무언가에 비치거나 녹아든 자신의 모습을 남긴 그녀처럼, 카메라에 자신을 담아본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셀카와 그녀의 사진이 다른 이유는 셀카는 내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가려버리기 쉽지만, 그녀의 셀프포트레이트는 세상 속에서 비밀스러운 누군가를 발견하듯, 세상과 만나고 그 안에 스며있는 자신을 기록하듯 남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은근하고도 신비로운 느낌, 그리고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느낌이 든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는 프랑스에서 출생하였으나 미국에서 활동한 조각가이다. 테피스트리를 수선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모든 추억과 사랑했던 것들을 실로 짜 넣는 작업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였으나 어머니 사후에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고, 99세의 나이까지도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고 한다. 2017년 볼로냐 라가치상 예술상을 수상한 그림책 <거미엄마, 마망>을 보며, 엄마와 그녀 사이의 관계의 온기가 느껴졌다.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하며 닳고 해지고 찢어진 것들을 기우고 짜깁기하고 다시 엮어 살아나게 만들었던 엄마가 거미와 닮았다고 생각해서 철과 대리석을 이용하여 높이 9미터가 넘는 거미 조각품 <마망>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그녀. 이 책속에는 그녀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자녀에게 얼마나 크고도 특별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좋은 영향력을 남기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다짐으로 마음을 추스르게 해주었다.
오늘의 책은, <THE GIRL AND THE BICYCLE>
나보다 먼저 전시공간에서 나와 6층의 열린 서재에서 그림책 속에 푹 빠져있는 아이들 옆에 자리를 잡고 서가를 둘러보았다. 오늘 만난 책은 <THE GIRL AND THE BICYCLE>이었다. 제목만 보면 영어책으로 보이지만, 영어를 못 읽는 아이들도 볼 수 있는 글이 없는 그림책이다. 너무 원하는 초록자전거를 쇼윈도우에서 보게 된 주인공 여자아이는 부모님께서 사주시지 않자, 나름의 방법으로 돈을 모으기로 결심한다. 이웃집의 가사를 도와 돈을 벌려고 했지만 몇몇 집에서는 아이가 어려서인지 거절을 한다. 그러다가 만난 한 할머니의 집에서 드디어 일할 기회가 생긴다. 여자 아이는 할머니를 도와 열심히 일을 했고, 돈을 모아 결국엔 자전거를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으게 된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 가게의 쇼윈도우에는 그 자전거가 이미 팔리고 없었다. 이 여자아이는 그 순간 바로 옆에 진열되어 있던 동생에게 꼭 맞는 사이즈의 세발자전거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모아둔 돈으로 동생을 위해서 세발자전거를 사주게 되는데....
욕심을 부릴수록 내가 갖고 싶은 것에 대해 조바심이 나고 바로 눈앞에서도 빠져나갈까 불안해지지만, 그 욕심을 내려놓을 때 더 크고 좋은 선물이 준비되어 있음을 미리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인생은 대부분 내가 기대하는 꼭 그만큼 이루어지지도 않고, 내가 걱정한 만큼 잘못되지도 않던데. 이 책을 읽고 하나 주고 두 개 얻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내가 가진 하나를 다 내어 주어도 괜찮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하나 주고 두 개 받고 싶은 나의 이 어린 마음을 어찌할지. 그림책을 읽으면 동심으로 돌아가더니, 이젠 동심이 지나쳐 나이를 아예 거꾸로 먹어버리나 보다. 그래도 이 책이 감동적인 건, 내 마음 속에서 ‘하나를 버려도, 때론 그 하나가 전부인 것 같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어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전부인 것 같은 하나도 너에게 줄게! 그래도 나는 행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