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강아지와 함께 달리다

by GoGo자형

경복궁 댕댕런 – 문화유산에 그림을 남기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해는 여전히 뜨겁습니다. 하지만 공기의 결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살짝 스며드는 계절, 9월입니다.

러닝 하는 사람들 중에 내가 달린 경로를 지도 위에 멋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게 그려진 그림을 GPS ART라고 해요. 경복궁 근처에도 아주 귀여운 GPS ART가 있더라고요.

바로 “경복궁 댕댕런”!

경복궁 광화문에서 시작해서 골목골목을 달리고 몇 군데 문화유산을 달리면 강아지 모양이 그려집니다. 후후! 너무 귀엽지 않나요? 이번에는 문화유산을 달리고 배우는 것을 넘어서, 두 발로 강아지를 함께 그려볼까요?


광화문 월대 – 경복궁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자리

경복궁_광화문_광화문 및 월대 전경(궁능유적본부).jpg 경복궁 광화문 전경(출처: 궁능유적본부)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정문 앞에는 넓은 돌단이 놓여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광화문 월대(月臺)예요. 정문을 드나드는 왕을 맞이하고, 나라의 의례를 치르던 상징적 공간이죠. 광화문 월대는 고종 대에 조성되었다가, 1923년 일제강점기 도로와 전차선로 공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2023년 발굴 조사에서 흔적이 잘 드러나,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돌 사이사이가 조금 다르지 않나요? 하얗게 깨끗한 석재 사이에 약간 노란빛을 띠는 돌들이 보입니다. 이 부재들은 고종 당시 실제 월대에 쓰였던 난간석으로, 발굴 과정에서 되찾아 다시 사용한 것들이에요. 월대 앞 계단 옆에 서 있는 귀여운 돌짐승 ‘서수상(石獸像)’도 원래는 호암미술관에 있던 것인데, 시민 제보로 알려져 기증받아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관심이 모여 이처럼 진정성 있는 복원이 가능했던 거죠.

이제 출발선에 제대로 섰습니다. 자, 본격적으로 강아지를 그리러 달려볼까요? 광화문을 나서 구불구불한 서촌 골목을 지나면, 지도 위에 어느새 강아지의 입과 코가 그려집니다.


청와대 – 경복궁의 후원

청와대.png 청와대 전경(출처: 청와대 공식홈페이지)

북악산 자락에 자리한 청와대는 오랜 세월 다양한 얼굴을 지닌 공간입니다. 고려 남경의 별궁이었고,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 역할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관저, 광복 후에는 미군정 사령관의 관저로 쓰이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관저로 이어졌습니다. 1960년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는 지금의 이름, 청와대로 불리게 되었지요. 2022년 시민에게 개방되며 모두의 공간이 되기도 했지만,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이제 우리는 청와대를 지나며 지도 위에 강아지 얼굴을 그립니다.

이어지는 팔판동과 삼청동 골목길에서는 강아지의 귀까지 완성하지요. 지금은 무슨 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다 달리고 나면 GPS 위에 귀여운 그림이 펼쳐집니다. 자, 조금만 더 궁금증을 안고 달려볼까요? 이제 강아지 등을 그리러 창덕궁과 종묘로 향합니다.


창덕궁 – 조선의 궁궐 중 유일한 세계문화유산

돈화문.jpg 수리 중인 창덕궁 돈화문(촬영: gogo자형)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은 1412년에 세워진,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입니다. 지금도 북촌·종묘·익선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아쉽게도 현재는 수리 중이라 직접 볼 수 없지만, 2030년 이후에는 새롭게 단장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궁궐 중에서도 자연 지형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진 후원이 잘 보존된 궁궐로, 이 때문에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답니다. 창덕궁을 지나 율곡터널을 건너면 원남동 사거리에 닿습니다. 여기서 요즘 뜨는 서순라길로 들어가 종묘 외대문을 거쳐 세운상가를 지나 청계천으로 이어집니다. 이 구간이 바로 강아지의 뒷다리가 되는 부분이랍니다. 하하!


청계천 – 시간의 흐름을 품은 도심의 강

청계천2.jpg 청계천(촬영: gogo자형)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은 오랫동안 도심 속 생활 하천이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복개되어 도로로 덮였지만, 2005년 복원되며 지금의 산책로와 물길로 돌아왔습니다. 빠르게 흐르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도, 청계천의 바람과 물소리는 바쁜 현대인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휴식을 선물합니다. 최근에는 쉬리라는 물고기가 청계천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요. 2 급수 이상의 깨끗한 민물에서만 사는 물고기인데, 도심 속 청계천에서 발견되다니 놀라운 일이죠. (참고로 <쉬리>는 1997년에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주연으로 나온 영화 제목이기도 해요.)

청계천을 따라 천천히 달리다 보면 어느새 종로 한가운데, 커다란 종루 보신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보신각 – 새해와 함께 울리는 희망의 종

종로의 한가운데, 커다란 종루인 보신각이 서 있습니다. 매년 새해 자정, 제야의 종이 울리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보신각”이라는 이름은 고종 때 지어진 것으로, 종 이름도 그때부터 보신각종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현판은 1953년 보신각 중건 당시 새로 제작된 것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랍니다.

계천과 보신각을 함께 걸으며 도심 속 역사와 시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 길을 달리는 댕댕런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보신각(국가유산포털).jpg 보신각 전경(출처: 국가유산포털)

종로 – 서울의 심장부, 달리며 만나는 역사

‘종이 울리는 거리’라는 뜻의 종로는 조선 건국과 함께 열린 길이자, 지금까지도 서울의 대표적인 거리예요. 정치·경제·문화가 모두 모였던 중심지라, 달리면서도 곳곳에서 역사와 이야기를 느낄 수 있죠.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시전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구름(雲)처럼 모여 **운종가(雲從街)**라 불리기도 했어요.

1900년대 초 종로와 피맛길.JPG 1900년대 초 종로(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원래는 광화문 앞 광장인 육조거리만큼 넓은 도로였지만, 상인들이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도로가 좁아졌고, 1974년에 현재 너비로 확장·정비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종로는 경성의 중요한 길이었는데, 일본인들이 주로 살던 중구와 달리 조선인이 살던 공간이었어요.

1960년대 후반 종로3가 지역1.JPG 1960년대 종로(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달리다 보면 종로의 골목과 오래된 음식점들을 만날 수 있어요. 예전에 교보문고 근처의 피맛골, 종로 3가 뒷골목의 생선구이·보쌈 거리, 종로 5가 광장시장과 약국거리가 있었죠. 종로 3가에는 한때 서울극장, 피카디리극장, 파고다극장이 있어서 영화의 거리로 유명했는데요, 청계천에서 발견된 <쉬리> 영화를 바로 여기 피카디리극장에서 봤었어요. 달리면서 이런 추억을 떠올리게 되니 그저 달리는 것이 아닌 추억의 시간을 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익선동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거리 풍경도 달라졌어요. 머지않은 미래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겠지요?

청계천과 종로를 넘나들며 강아지 다리를 그린 우리는, 다시 광화문을 향해 달려볼게요.


문화유산 속 강아지 한 마리

댕댕이gps.jpg 댕댕런 GPS

광화문에서 시작해, 청와대와 창덕궁, 종묘와 보신각, 그리고 종로의 거리를 잇는 길.

오늘 우리는 문화유산과 함께 달리며,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났습니다.

잠시 잊고 있던 저의 20대를 종로에서 만나기도 했고요.

귀여운 강아지 모양의 러닝 기록은 오늘 러닝의 굿즈라고나 할까요?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 댕댕런으로 가을을 시작해 보세요.


런인문화유산, 다음 달에도 또 함께 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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