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숨은 문, 창경궁 수문

by GoGo자형

율곡로, 자주 지나던 길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 율곡로와 율곡터널.
러닝을 할 때면 늘 스쳐가는 구간이다.
오궁런, 경복궁 댕댕런을 할 때마다 지나왔지만,
그곳에 수문이 있다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포장된 바닥 아래 묻혀 있어, 그저 평범한 인도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궁궐의 물길, 어구(御溝)

알고 보니 이곳은 본래 궁궐에서 흘러나온 물이 빠져나가던 자리다.
궁궐 담장을 지나 바깥으로 이어진 물길.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창경궁 안에는 여전히 물길이 살아 있다.

궁궐 안의 물길은 ‘어구’라 불렸다. 겉으로 드러난 길은 개거(開渠), 땅속으로 숨은 길은 암거(暗渠).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물길은 분명 흐르고 있었다.

창경궁 수문.jpg 동궐도상 창경궁 수문 위치

공릉동 원조 멸치국수.

러닝을 하다 보면 원남동 사거리 신호에서 자주 멈춘다.
그 순간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냄새.

“공릉동 원조 멸치국수.”

몇 번은 꾹 참고 지나쳤지만, 어느 날은 결국 들어갔다.
아침 러닝 도중에 먹은 멸치국수 한 그릇, 비빔국수 한 그릇.
담백하고 따끈한 국물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릴 적 엄마와 시장에서 먹던 국수집 풍경까지 겹쳐지며,
그날의 러닝은 오히려 더 특별해졌다.


언젠가, 다시 흐를 날

창경궁 앞 수문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언젠가 그 자리에 물길이 되살아나,
햇살에 반짝이며 궁궐 밖으로 물이 흘러나온다면 얼마나 멋질까.

지금은 바닦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궁궐 안과 밖을 이어주던 물길.


오늘도 나는 그 앞을 달리며 잠시 멈춰 생각한다.

“언젠가, 국숫집에서 따끈한 멸치국수를 먹으며
수문을 바라보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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