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탑
정식 명칭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이지만
우리는 보통 익숙하게 석가탑이라고 부른다.
1966년, 풍화와 도굴 시도 등으로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석가탑은 오랜만에 본격적인 해체 수리를 시작하게 된다.
수리 작업이 한창이던 1966년 10월.
2층 옥개석을 들어 올리던 과정에서 일이 벌어졌다.
도르래를 지탱하던 지렛대 한 개가 갑자기 부러지며, 들어 올리던 2층 옥개석이 균형을 잃고 이미 분해해 놓았던 3층 옥개석 위로 떨어진 것이다.
결과는 두 옥개석 모두 파손.
“석가탑이… 수리 도중에 파손됐다고?”
지금 들어도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이 충격적인 사고는 뜻밖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2층 탑신석 윗면의 사리공을 조사하던 중 금동제 사리외함과 비단에 싸여있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본) 등 귀중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것이다.
유례없는 사고 속에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파손된 부재와 복잡한 상황 탓에 1966년 해체 수리는 거기서 사실상 멈춰버렸다.
문화재 행정도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던 시기라, “수리 중 국보가 파손됐다”는 충격이 컸고
빠르게 공사를 재개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결국 파손된 부재를 임시로 접합하고, 해체된 부위만 다시 조립하는 정도에서 1966년 수리는 마무리됐다.
1966년 수리 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탓에 석가탑은 이후에도 계속 기울고 균열이 심해졌다.
결국 2010년 안전진단을 거쳐, 2012~2015년 약 3년에 걸친 전면 해체 수리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석가탑은 이때의 수리를 통해 몸 상태를 다시 바로잡은 모습이다.
노트르담 성당 화재나 석가탑의 옥개석 파손처럼 문화유산의 수리 중에 일어난 사고는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위험을 0%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1966년 석가탑 사고는 단지 하나의 돌이 부서진 사건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우리가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수리가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들을 다시 던지게 만든,
문화재 수리 역사 속 중요한 장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