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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녹 Aug 27. 2020

여왕 마고와 잔다르크 속 여성

영화에서 기독교 속의 여성 읽기

나의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첫 과제로 제출했던 리포트,

기독교 학교의 필수 교과목이었던 '기독교와 세계' 수업의 과제였다.

아래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읽은 영화 후기이자 감상평


La Reine Margot, 1994: 여왕 마고
The Messenger: The Story of Joan of Arc, 1999 : 잔다르크


1. 들어가며

  피로 얼룩진 종교의 삶, 중세에는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 두 편, <여왕 마고>와 <잔다르크>. 당시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수많은 종교적 학살과 만행이 '과연 정말 신의 뜻일까'를 생각하며 감상했다.

  많은 학자들이 종교의 기원을 다양하게 내세웠으나 그 본질은 하나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신성한 존재에 의탁하거나 스스로 내면의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것. 인간은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것과는 다른 궁극적인 것에 관심이 향하고, 유한한 삶을 넘어서는 영원(Eternity)을 추구한다. 유럽이 기독교화되면서 이단으로 비난을 받았던 집단들도 본래는 기독교인들이며 단순히 교리나 예배 의식 정도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보면 실로 그 본질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여왕 마고>에서 신교를 인정 못했던 구교의 잔혹한 학살도, <잔다르크>에서 잔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는 일도 본질은 기독교에서 기원했다. 궁극적으로는 똑같은 것을 추구함에도 신을 명분 삼아 서로를 죽이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러한 모습을 신은 어떻게 바라볼까.


2. 여왕 마고(La Reine Margot)

  마땅히 행복해야 할 축일에 진동했던 피비린내. 1572년 촉발된 성 바르톨로메오 대학살은 구교도인 가톨릭과 신교도인 위그너(Huguenots) 간의 화합을 명분으로 발로아의 마고와 나바르의 앙리의 결혼 이후 자행되었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잔혹한 학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화 <여왕 마고>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위그노 전쟁(1562~1598)을 전체적 배경으로 한다. 이 신·구교도 간의 종교적 갈등은 귀족 간 갈등, 귀족과 왕권의 갈등, 왕위 계승 문제, 신교를 지지하는 영국과 구교를 지지하는 스페인을 둘러싼 국제적 외교문제가 복잡하게 설켜 있다. 


1) 신교도, 파리가 그들의 공동묘지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

  ‘위그노’는 가톨릭교도들이 의식적 행동을 하기보다 항아리처럼 단순히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는 신교도들을 경멸해서 만든 말로, 프랑스의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신교도를 일컫는다. 당시 루터나 칼빈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이단이었고 종교개혁가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득권인 가톨릭 쪽에서는 이들이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였을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 프랑스의 왕들은 신교를 탄압해 왔지만, 프랑스의 신교도들은 도시민, 부농, 상공 시민, 그리고 유력한 귀족들에게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여왕 마고> 당시의 프랑스 신교도들도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 정도에 그쳤으나, 부유한 도시 상공 시민층과 전통적인 부농 계급들이 중심이 되어 그 영향력은 지대했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위그노의 지도자인 꼴리니와 나바르 왕조의 앙리를 죽이려 했던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2) 가해자이나 결국은 피해자인 그들, 신교도

  결혼 예식에 대한 협의를 하러 파리에 온 잔 딜 레브(앙리의 어머니)가 독이 묻은 손수건에 의한 살해인지, 지병인 폐렴 때문인지 모를 의문사를 당함으로 시작부터 이 결혼은 파국을 맞을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앙리는 결혼식이 거행된 구교도의 성당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함께 결혼식을 치르고 앙리가 처음으로 마고에게 건네는 대화가 이러하다. ‘너희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를 죽였어’. 그들의 삶에 깊게 스며든 종교적, 정치적 갈등은 결혼마저도 순탄치 않게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잔인하고 표독한 어머니인 카트린은 종교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5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이들이 후손을 갖지 못할 경우 왕위 계승의 1순위는 나바르의 왕이었다. 프랑스와 2세, 샤를 9세, 앙리 3세는 왕이 되었지만 후손을 남기지 못했고 결국 나바르의 왕인 앙리가 앙리 4세가 되어 프랑스의 왕이 된다. 이를 이전에 막기 위해 앙리를 죽이고자 책에 독을 묻혔던 카트린은 그 책을 샤를 9세가 읽음으로써 자신이 낳은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 샤를 9세는 자신보다 자신의 동생인 앙리 3세를 더 예뻐했던 어머니를 원망하지만 그럼에 더 사랑을 갈구한다. “신이시여, 왕관도 왕권도 없이 당신에게 갑니다. 이 왕의 죄를 씻어주시고 단지 당신 자식의 괴로움만 생각해주시옵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은 그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왕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두고 신 앞에 온전히 설 수밖에 없는 그의 마지막 말에서 왕의 권력과 종교 간의 갈등이 부질없음을 느꼈다. 


3) 피비린내 속에서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던 외로운 여왕, 마고.

  매혹적인 여성인 마고(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의 애칭), 그녀는 샤를 9세의 여동생이자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딸인 발루아 왕족이다. 그녀는 전통적인 가톨릭이지만 자신의 오빠들과 근친상간을 일삼고 오로지 쾌락만을 쫓아 살아간다. 그리고 못 생긴 앙리와 결혼한 첫날밤, 제독 콜리니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온 신교도 ‘라 몰르’와 관계를 맺고 사랑에 빠진다. 라 몰르가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역사적 영화에 사랑이 가미됨으로써 마고에 대한 인간적 이해가 쉬워졌고,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나 보다 스토리 전개가 매끄러워졌다고 본다. 마고는 자신의 결혼을 보기 위해 온 하객들이 파리에서 죽음을 무자비하게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에 들지 않던 남편이지만, 그를 살리기 위해 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종용하고 앙리는 개종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한다. 그녀가 비록 쾌락만을 쫓아 살아왔으나 백성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무엇이 옳은지 깨닫는 과정 속에서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4) 피로 점철된 땅에 종교의 자유와 함께 찾아온 평화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발포(發布)하면서 부분적이나마 모든 종교적 신앙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허용되었다. 그 후 사실상 프랑스에서의 종교전쟁은 막을 내린다. 부르봉 왕조의 시조가 된 앙리 4세는 “하느님은 내 왕국의 모든 국민들이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길 원하신다”는 말을 남기며 프랑스 땅에 평화를 가져왔다. 개종을 거듭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고 끝내 왕권을 얻은 그를 욕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백성들이 일요일이면 닭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배고픔 없이 평화롭게 살게 해주는 신이면 그 신이 어떤 교단의 신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닭이 풍요로운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도 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그의 생각이 백성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기에 그가 왕으로서는 최고의 왕이 아니었을까. 하늘나라의 왕인 신도 자신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백성들이 평화 속에 있기를 궁극적으로 바라지 않았을까…. 이젠 프랑스의 왕보다 더 프랑스 백성의 아픔을 잘 알았던 잔의 삶도 살펴보려 한다.


3. 잔다르크 (The Messenger: The Story of Joan of Arc)

  중세 사회의 주류인 귀족이나 성직자도 아닌 데다 여성이었던 잔다르크. 그녀는 로렌의 동 레미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작농의 딸로 읽고 쓸 줄도 모르는 17살의 소녀에 불과했다. 검을 다루는 법을 배운 적도 전장에 나선 적도 없는 그녀는 대천사 미카엘, 성 카테리나, 성 마르가리타로부터 왕세자를 도와서 프랑스를 구하라는 ‘음성’을 듣는다. 그녀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만을 믿고 황태자에게 군대를 맡겨 주면 땅을 되찾는 승리와 렝스에서의 대관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당시 샤를 7세는 북부 지역을 빼앗겨 대관식도 치르지 못한 채로 남부 지역에 머물며 최악의 상황이었다. 절박함이 작용하긴 했겠지만 그녀를 실험하기 위해 왕세자는 누추한 옷을 입고 신하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잔은 숨은 왕세자를 바로 발견해 내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계시를 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간청함으로 ‘계시를 받은 자녀’라는 영웅의 면모를 드러낸다. 마녀가 악마와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갖는다는 믿음 때문에 치러야 했던 처녀성 검사도 무사히 끝낸 뒤 잔은 오랫동안 잉글랜드 군에게 포위되어 있던 오를레앙 지역으로 병사를 몰고 달려간다. 


1) 백년전쟁이 가져다준 국민국가, 신의 계획일까.

  <잔다르크>는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두고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서 일어난 백년전쟁(1337~1453)을 배경으로 한다. 백년전쟁은 프랑스를 전장(戰場)으로 했고, 긴 전쟁에 국토와 국민 모두 피폐해져 갔다. 왕가의 다툼에 백성들은 의미 없이 죽어가야 했지만 지속되는 전쟁에 백성들은 국가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모든 전쟁과 싸움이 신께서 계획한 수순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선악과를 동산의 중심에 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서라지만 인간이 그를 어길 것 모두 알고 있지 않으셨겠나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국민국가 형성의 배경으로 백년전쟁이 있어야 했듯이 말이다.


2) 버림받은 영웅, 잔.

  프랑스 국민과 병사들은 모두 오랜 전쟁으로 지쳐있었지만 천사의 계시를 받아 온 잔의 노력에 감동했다. 그리고 잔은 국가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백성들의 애국심이 타오르게 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해 열세에 몰려있던 프랑스 군은 기적적으로 오를레앙에서의 승리를 얻고 또한 랭스를 탈환한다. 그리고 랭스에서 샤를 7세는 대관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왕위를 얻었다는데 만족하며 그는 파리 탈환으로 잉글랜드 군을 완전히 축축해 내자는 잔의 말을 무시한 채 지낸다. 대체 누가 아내와 편히 목욕을 즐기는 왕의 얼굴에 잉글랜드군의 통치 아래 힘들어하는 백성들이 쓴 눈물과 고통의 편지를 던질 수 있겠는가. 잔은 왕의 소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다시 갑옷을 입고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국 콩피에뉴 전투에서 패한다. 잉글랜드를 돕는 부르고뉴 군대에 포로로 잡힌 잔다르크는 잉글랜드에 넘겨졌고, 잉글랜드는 샤를 7세에게 엄청난 몸값을 요구한다. 그러나 샤를 7세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다. 이미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왕위가 확보된 샤를 7세에게 잔다르크는 더 이상 필요 없었던 것이다.


  잔은 잉글랜드와 부르고뉴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재판에서 마녀, 이교도, 우상숭배의 죄를 뒤집어쓴다. 중세 기독교는 사제를 통해서만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며 그녀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잔 다르크는 끝내 자신에게 내린 신의 계시를 부정하지 않았는데, 그녀를 재판하며 사제들도 그녀가 진정 신의 계시를 받은 건 아닌지 두려워한다. 영화의 말미에 사제가 죄를 인정하면 살 수 있다고 사인을 하길 부탁하지만 결국 그녀는 루앙의 광장에서 나와 같은 19살의 나이에 화형을 당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불 속에 타들어 가는 그녀의 발과 흐르는 눈물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그녀의 짧은 인생이 종교에 매여 있었기에, 그래서 피에 얼룩진 삶을 살다 화형을 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언니가 잉글랜드 군에게 자신을 대신해 죽은 뒤 강간을 당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받은 상처가 그녀에게 계속된 성공을 가져다준 근원이 아니었나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

 1456년, 샤를 7세는 백년전쟁이 끝난 후에 잔의 마녀 혐의를 풀어주고 명예를 회복시켜주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녀를 복권시킨 것이다. 또한 잔을 화형 시킨 교회는 1920년에 그녀를 성녀로 추앙한다. 


4. 끝내며 - 진정한 신의 뜻이 무엇일까.

  신의 뜻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신의 계시를 따라 승리를 쟁취했다고 믿었던 잔 조차도 독방에 갇혀 환상을 보며 자신이 신의 계시를 통해 일을 했는지 자문했을 정도이기에. 하지만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는 행위, 또는 어떤 종교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며 인간 스스로 타인을 정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단으로 명명하는 것은 기독교가 패권주의와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타락한 그들의 행위를 감추고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비이성적인 신앙 방법을 고수하는 집단은 지탄받아야겠지만, 더 이상 이단이라는 명분으로 마녀 사냥을 하는 비이성적인 일은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본다. 궁극적으로는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종교에 매여 빛바랜 인생을 살다 간 마고와 잔의 삶을 돌아보며…….


5. 참고 자료

오성근 : 마녀사냥의 역사, 미크로, 2000 

심재윤 : 서양 중세사의 이해 , 선인, 2005

조계광 옮김 : 교회사 100대 사건, 케네스 커티스, 스티븐 랭, 랜디 퍼터슨 공저, 생명의 말씀사, 2002

박미림 옮김 : 여왕 마고 시대의 잔혹 연애사, 잔혹한 열정, 로베르 뮈샹블레 저, 북 프렌즈, 2007

김형곤 : 영화로 읽는 서양의 역사, 175~188P, 147~160P, 새문사, 2008

http://navercast.naver.com/peoplehistory/foreign/2241

http://navercast.naver.com/peoplehistory/foreign/2028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107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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