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오늘은 시댁에서 쿠킹 클래스가 있는 날.
반쪽짜리 일을 하는 나라서 참여 가능했다.
단, 아들 하교 시간과 나의 재출근 시간이 거의 겹치는 날.
이라는 게 오늘의 사건 배경.
아들에게 어젯밤부터 단단히 일러두었다.
말이 통하는 길이 막힌 우리 아들이지만
아직은 입력한 대로 실행하기에,
느려서 그렇지 실행을 못하는 건 아니라서,
"학교 마치고 집에 학교 짐을 나둔 뒤,
조금 쉬다가 할머니 집에 같이 갈 예정"
앵무새처럼 5번 이상 반복해서 말해드렸다.
아들이 집에 도착하기 10분 전,
나는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왜 이놈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가.
도착하고 10분 동안 또 앵무새처럼 이야기해 줘야 하는데
이상하다.
군것질할 돈도 없고, 군것질할 애도 아니고,
놀이터에서 급으로 놀 정도로 그렇다 할 친구도 없는데
학교 마치고 어딜 들러야겠다는 머리를 쓸 수 없는데
이상하다?
1분..
2분..
3분..
곧 나가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요한 거실에 덩그러니 휴대폰 시계만 바라볼 뿐.
아니다.
차라리 학교로 가 보는 거야.
아들이 오는 길을 역으로 가면 만날지도.
차로 이동하면 엇갈릴까 힘차게 뛰었다.
하교할 시간이 한참 지났나 보다.
아이들이 거의 없다.
느긋하게 간식 사 먹는 아이들 말고는.
7분..
아, 환장하겠네.
8분..
식은땀 주룩.
"죄송해요. 제가 아들 일로 급한 일이 생겨서 10~2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시간 괜찮으실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흔쾌히 이해해 주신 덕에 열심히 초등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며
남편에게 전화했다.
당황한 남편.
아직 1학년이고 휴대폰도 없는지라
우리의 머리는 순간적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나는 안전 지킴이 선생님을 만났지만
전혀 모르셨고, 담임 선생님께도 하교했다는 확인까지 받았다.
그때, 남편이 "잠시만"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3분쯤 지났을까,
"어휴 어휴 어휴, 그냥 일 하러 가라... 우리 엄마 집에 있단다...
티비 보고 있네. 이 시끼."
"응??????"
날 오랜만에 뛰게 하고,
우릴 걱정시키고,
내가 뻘짓을 하게 만들어서 화난 것이 아니다.
신기했다.
융통성이 발휘된 적이라곤 0.000001의 순간도 없었는데
어차피 할머니 집에 가야 하니 미리 간 것인가!
오히려 감탄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 12살이 된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융통성은 아니다.
그냥 대단한 편집자였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