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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북을 추천해 달라고요?

'몰입' 하지 못하면 챕터북의 벽을 깨지 못한다.



우리 아파트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 안에는 원서를 모아둔 방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생각보다 많은 원서들이 비치되어있고, 친절한 도서관은 근처에 영어도서관이 있음에도 신청하는 원서들을 제법 잘 사 주는 편이다.


낡고 오래된 영어 그림책들을 보고 있으면, 이미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간 엄마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약 3년 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알법한 노** 그림책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영어 모임 분들이 열심히 희망도서를 해둔 덕분에 제법 다양한 원서들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매번 느끼지만 영어 그림책은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낡기도 하고, 희망도서 했던 책들을 다시 만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챕터부터는 거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그대로 진열되어 있다.

챕터부터는 시리즈라 누군가 중간에 빼가면 듣기가 어려워서 세트로 구매를 해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영어 그림책에서 머물 뿐 챕터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볼 땐 두 번째일 확률이 높다고 본다. 생각보다 챕터북까지의 진입이 그렇게 만만한 과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약 2년간 진행하면서 7살 9월에 들어온 아이들이 한 명씩 챕터로 진입하고 있고, 초기 챕터 단계를 진행하는 친구들이 절반 이상 늘었다. 물론 이미 졸업한 친구들 중에는 챕터에 진작 넘어간 아이들도 있다. 프로젝트를 하는 아이들이 시간이 되자 하나둘씩 단계에 맞게 성장하다 보니 누구나 당연히 챕터에 진입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만, 많은 엄마들이 그전에 포기하는 것을 나는 자주 목격했다.


그만큼 엄마표 영어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란 얘기다. 방법을 알아도 매일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책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쉽사리 고분고분 말을 들어주는 아이는 많지 않기에 이론을 알았다 하더라도 실전에서 무너지는 일은 허다하다.





여기서 말하는 챕터북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면, 3점대 갱지 챕터류를 의미한다. 챕터북에 진입한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를 뜻한다. 인풋을 충분히 쌓아서 그 정도의 점수대의 책을 듣거나 읽으면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이고, 다소 길어진 책을 듣거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집중력이 있다는 얘기이다. 거기에 책 자체에 대한 흥미와 독서습관이 갖춰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이 충족되었을 때 챕터북을 시도하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챕터북의 경우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한 가지는 바로 아이의 '취향'이다. 갱지 챕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인풋이 쌓여있는 아이라면 어떤 책이든 수준에 맞는 것을 넣어줄 때 이해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이해 가능한 것과 아이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1시간 혹은 1시간 이상의 집중 듣기를 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그 책을 듣거나 읽으면서 '몰입'의 경험을 맛보아야 가능해진다. 아이가 책의 내용은 이해하나 취향이 맞지 않는다면 아이는 1시간이라는 시간을 버텨내지 못하고 중간에 불편함을 호소하게 된다.


물론 초기 챕터까지는 아이의 취향보다는 어떤 책이든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기초 영어 실력에 총력을 다해야 할 때이므로 다양한 책들을 시도해도 좋지만 본격적인 챕터 북부터는 철저하게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


아이는 인풋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실력이 있고,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책을 만나면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1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듣는다고 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더 듣겠다고 먼저 나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챕터북을 추천해주는 것은 무의미하고, 챕터북의 순서를 정해주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이다. 챕터북을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은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몫인데, 엄마가 아이의 취향을 파악하지 못한 채 AR점수로만 책을 고르고 넣는다면 아이를 힘들게 하는 일이다.

같은 점수대의 다양한 책들을 알아보고 정리해두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중에서 어떤 책을 아이가 좋아할지 알아보는 것은 엄마의 몫이고, 그중 어떤 책을 할 것인지 최종 결정을 짓는 것은 아이가 선택할 문제이다. 엄마는 미리 책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정도로 아이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면 된다. 아이는 스스로 책을 골랐기 때문에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책을 대하게 된다.

거기에 또 하나는, 갱지 챕터 3점대에 진입한다는 의미는 집중 듣기 자체도 인풋, 즉 '독서'로 전환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의 정서 수준을 넘어서는 독서는 아이에게 득보다는 실이 크다고 생각한다. 같은 점수대라도 아이의 정서 수준에 맞지 않을 만큼 다루고 있는 내용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라면 그런 책들은 나중에 넣어줘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잭클린 윌슨의 책들은 3점대~ 5점대의 책들이다. 내용도 길고, 자간도 좁은 편이다. 잭클린 윌슨은 저학년 세트와 중학년 세트로 구분 지어 판매된다. 저학년이나 중학년 책들 중에는 가정 불화, 이혼, 가정 폭력, 재혼과 별거, 왕따, 정신질환 등을 다룬 내용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오디오가 있고, 아이가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넣어주는 경우가 있다.

​만약 그게 번역서여서 그 내용을 미리 엄마가 읽어봤다면 그 책을 굳이 저학년에게 읽으라고 주었을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하다. 책 육아를 하는 엄마들 중에는 동화책을 골라줄 때는 심혈을 기울이는 반면, 아이가 읽기 독립이 된 이후에는 아이가 읽는 책의 내용을 체크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글책도 그럴 것인데 영어책을 잘 알지 못하는 엄마들이라면 내용보다는 AR 확인과 오디오 유무만을 가지고 책을 골라 넣어 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 검색 몇 번으로 충분히 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건 엄마의 철학의 문제일 뿐.

​결론적으로 얘기하 지면,

갱지 챕터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영어 인풋이 그렇게 쌓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챕터 북부터는 아이의 취향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 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인풋이 차고 넘치는데 아이가 책을 거부한다면 그건 엄마의 챕터북 공부가 부족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리스트는 참고 사항일 뿐, 그 사람의 진행 순서 따위를 체크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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