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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채 Jun 21. 2023

엄마, 우리 아빠는 하늘나라에 있잖아


이혼 후 남편은 단 두 번의 면접을 끝으로 아이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아마 아이를 보러 오지 않은 그 시기에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물론 재혼을 하지 않더라도 전남편은 아마 면접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면접을 하더라도 자기의 일정에 맞추어 면접을 하고 싶다 했고, 부모님과 함께 일을 했으니 일정한 시간에 면접을 하리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혼후 아이에게 이혼사실에 대해 눈높에 맞춰 여러번 말해 주었다. 관련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했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아이는 내 앞에서 이혼이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7세였던 아들이 멀쩡히 살아있는 전남편을 죽였다.


"엄마, 우리 아빠는 하늘나라에 있잖아, 나는 하늘만 보면 눈물이 나"


"아니야, 아빠 살아계셔. 우리는 같이 안 살아서 그렇지 살아있어"


"그럼 전화나 영상통화라도 하면 되는데, 전화도 없고 나를 만나러 오지도 않잖아. 아빠가 살아있으면 전화 좀 해줘"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을 했더라도 자기를 찾아와야 하는데, 왜 찾아오지 않는 것인지. 바쁘면 전화라도 해야 하는데 왜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인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전남편에게 3년 만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엄마랑 아빠는 이제 남이어서, 엄마가 전화해도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아. 


어른들의 문제로 네 마음이 아파서 엄마도 속상하고 미안해. 


그래도 아빠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는 이제 아빠랑 남이라서 아빠를 찾을 수는 없지만 네가 성인이 되면 아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아이는 두어 번 더 아빠가 죽었다고 했다.



8세였던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하며 유독 아빠의 부재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초등학교 1~2학년 시기에는 특히 가족에 대한 수업이 많았는데, 그 시기마다 아이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아빠가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는 말을 했고, 학원선생님은 아빠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했다.



8세 여름, 아이와 나는 심리상담을 시작하였다.



죽지 않은 아빠가 더 이상 연락하지도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스스로 깨달은 것은 아이가 9살이 된 해였다.



9살에 아이는 아빠가 자기를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너를 버린 게 아니야. 어른이 되면 또 사정이 생겨. 너를 만나러 오지 않는 것은 잘못하고 있는 거지만 너를 버린 건 아냐.


엄마랑 아빠가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너를 낳았고, 엄마도 아빠도 너를 정말 사랑해.


어린이가 이해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보러 오지 않는 거야. 정말 속상하겠다"

라고 이야기했다.


9살 어느 날 아이는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할머니 우리 아빠가 죽은 건 아니래요. 어딘가에 살아있대요"



10살인 아이는 더 이상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티브이를 통해 한부모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랑만 산다고 다 그런 건 아니야. 잘 모르고 있네~" 

하고 쿨내 진동하게 이야기한다.



"아빠 생각은 요즘 안나?"

"응, 예전에는 하늘 보면 아빠생각에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괜찮아."


아빠가 언젠가 자기를 찾아와 사과를 한다면 아이는 아빠를 용서해 주겠다고 했다.



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나는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 앞에 나는 늘 미안했다. 내 심리상담을 해 주시던 교수님의 말씀대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기로 했다.


다른 것보다 아이에게 이슈가 생길 때에 제일 괴로웠지만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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