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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채 Jul 14. 2023

미안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내가 생각해도 나는 예민한 엄마다.


예전에는 예민하다는 말에 부정하기 바빴는데, 이혼 후 자기 객관화를 열심히 해서 이제는 예민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책장에 책은 1번부터 30번까지 순서대로 꽂혀야 하고,

약속된 시간은 늦는 법이 없다. 최소한 약속된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해서 기다려야 마음이 편하다.


준비물은 꼭 챙겨야 하고

숙제를 안 해가는 것은 내 인생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다

촉각이나 청각적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꼬질꼬질한 아이의 손으로 내 팔짱을 낄 때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떠오르고 신이 나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소리 지르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

"쉿! 조용히~" 하고 말하고야 만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나 시간이 늦어지는 일이 생길 때 나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아! 통행량이 많은 곳에서 주차를 하는 일도 예민함 추가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참으로 숨이 막힌다.

내가 이래서 전남편이 바람이 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전남편의 성향을 무척 닮은 아이는 산만한 아들이다.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


수렵시대에 살았다면 참 좋았을 만한 아이다.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많다.


혼이 나면서도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한다.

숙제를 못 챙기는 일은 허다하고 "아! 맞다. 아! 실수!"는 18번이다.


말도 많다. 자기가 보는 것 느끼는 것 모두 나에게 계속 계속 계속 이야기해 준다.


하지만 밝고 따뜻한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자존감이 높고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 세상 모두가 나를 좋아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약간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게 될 때는 저 사람은 뭔가 조금 예민한가 보네 하고 넘어가버린다.


웃기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강아지가 사람이 무서워 짖을 때도 자기를 반가워해서 아는척하는 거라는 막강한 긍정러다.




아이는 예민한 엄마의 실수에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집중해서 일하고 있을 때 옆에 앉아서 과자를 소리 내어 뜯어먹거나 내 뒤에 1인 소파를 두고 뽀시락거리며 책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예민해진다.


'오구오구 잘 기다리고 있네'하고 칭찬하는 게 아니라 "엄마 지금 일해, 지금 예민해지고 있다~~ 이제는 주황불이야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데?"

하면 금세 "알겠어" 하고 엄마의 예민함을 쿨하게 넘긴다



나는 아이가 하교 후 아무 곳이나 던져둔 가방이나 벗어둔 옷가지를 보면 제대로 챙겨야지 하고  잔소리를 폭풍처럼 시전 하는데


아이는 내가 깜박하고 제때 태권도복을 세탁하지 않고 있으면 넉살 좋게 이야기한다


"엄마 태권도복 안 빨았네? 그냥 세탁기에 있는 거 들고 간다?" 하고 한마디 없이 들고 간다.




무척 상냥한 아이는 물건을 잘 잊어버린다. 잃어버리는 일도 있지만 존재자체를 깡그리 잊어버린다.


아이의 가방 속에서는 양말 열 켤레가 발굴되기도 한다.


양말을 사도사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어이 한 짝씩 남은 양말들을 보다 내양말을 신고 학교를 간다.


고맙게도 아이는 내 실수도 잊어버린다. 엄마는 뭐든 잘하는 사람으로 장기기억 속에 꼭꼭 저장해 두었다.




남편 없는 비채와 아빠 없는 아이


예민한 나는 아이가 실수할 때마다 전남편의 잘못들이 자동연상된다. 전남편도 나에게는 죽을죄(?)를 지은 천하에 못된 놈이지만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따뜻한 성미가 타인에게 까지 번져 외도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인성만 따지면 예민하고 약간 차가운 나보다 훨씬 나은사람이 아닐까?



내가 미숙한 인간이라 견딜 수 없는 아이의 행동들을 전남편과 연관 지을 때는 악순환의 고리가 돈다. 

그럴 때는 아이를 얼른 자신의 방안으로 대피시키고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청승을 떠는 날도 있다. 




아무튼 예민하고 강박적이고 빨리 어른이 된 나보다, 산만하지만 무던하고 밝고 따듯한 아이가 나보다 훨씬 세상을 즐겁고 재미있게 살 것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예민하고 강박적인 내가 키운 무던한 아이는 나의 장점과 전남편의 장점을 흡수해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본다. 사실 지금도 아이는 나보다 더 고차원적인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있잖아 그 집에 사는 걔, 걔 아빠 없더라? "

"그래 그 집 좀이상하더라고 "



이런 소리를 들을까 봐 어릴 때부터 아이를 참 엄하게 키웠다.


나이에 맞지 않은 과업들을 하나씩 연습해 왔다. 5살 아이와 분리수거 연습을 같이했고 킥보드나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돌아온 날에 꼭 혼자 찾아오게 한 뒤 내가 같이 찾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때는 크던 작던  꼭 사과할 수 있게 했다.


공부를 하기 싫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에게는 스스로 진정될 때까지 방에 들어가 있다 나오라고 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덕분에 자립심이 강해지고 실패를 통해 성장해서 혼자 병원도 씩씩하게 가고 미용실도 혼자 가서 머리를 잘 다듬어 온다.




엄마가 혼자 키워서

엄마는 출근을 해야 해서

아침은 아이 혼자 먹어야 했다.

간단하게 차려진 아침을 혼자 먹는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빠가 없어 저렇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더 바르게 더 엄격하게 더 예의 있게 키우려 했던 지난날이 후회가 많이 되는 밤이다.


어린아이에게 마치 어른처럼 행동하라고 강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엄마에게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유순한 것은 아니었는지

내면에 억눌린 것은 없는지..

(혼자 걱정되는 날에는 심리검사를 실시해본다. 이럴때는 내가 심리검사를 할수 있는 능력치가 됨을 감사해본다. 사설에서 하는 심리검사는 너무너무 비싸다)



그럼에도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엄마가 자기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잠들기 전에는 나를 꼭 안아주고 사랑한다 이야기하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



무서운 꿈을 꾸고 깨어난 밤에는

엄마를 깨울까 봐 까치발로 살금살금 소리 없이 걸어와 옆에 조용히 누워 다시 잠드는 아이


아이에게서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느낀다


엄마아빠가 나에게 주는 내리사랑보다 아이가 보내는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엄마도 엄마인생이 중요해서

엄마도 사람이라서

엄마도 미숙해

미안해



 ▲ 5살때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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