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그만하기로 했지만, 당신은 온 마음을 다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틀 연속 코피를 쏟는 나를 보고 동생은 "에휴,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에 사서 걱정하니까 그렇지."라고 말했다.
걱정 때문에 쏟아진 코피를 보며, 또 걱정을 한다. 나 정말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이런 날에는 습관적으로 했는 걱정들이 매우 아까워진다. 굳이 내 마음을 쏟고 내 미간의 주름을 쏟아부을 필요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했던 날들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는 동생을 보며 걱정하고, 약속 장소가 동대문이었는데 오늘 아침 동대문 모 건물에 방문한 사람은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에 다시 한번 걱정하고.
회사에 확진자가 발생해 등급에 따라 자가격리와 재택근무 상황에 돌입해 당장 급한 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에 걱정하고.
자주 산책 다니는 동네 개천은 지난 태풍 이후 전혀 정비되지 않은 채, '마스크를 씁시다'라는 피켓을 들고 열댓 명이 함께 행진하는 어르신들에게 일자리 재원을 나눠주는 정부를 걱정하고.
갑자기 다리를 저는 우리 강아지를 걱정하고, 걱정에 못 이겨 병원을 돌다가 다리뼈를 잘라내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공포스러운 말에 걱정하고.
병원에 다녀온 후로 우리 강아지가 밥을 안 먹어서 걱정하고, 밥 안 먹는 걱정과는 별개로 또 강아지의 비만을 걱정하고( 수의사가 "이 아이는 너무 과체중이에요. 다이어트가 시급합니다."라고 말했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걱정들도 내 안에서는 사이좋게 걱정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동생은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건물과는 전혀 별개의 곳에서 잠시 친구를 만났고, 동대문구의 범위는 14.5제곱킬로미터로 확진자와 밀접 접촉이 일어나기엔 너무 넓은 면적이었고,
회사의 임원들은 내가 회사 걱정을 이리도 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 부서 사람들 조차도.
국가나 지자체의 고용지원 예산을 하천 정비에 쓰건, 시간 때우기식 일당으로 쓰건 내 근심과 한숨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우리 강아지는 비만이어서 다이어트가 시급했는데, 다행히도 식욕이 줄어 오늘부터 다이어트 1일이 될 수 있는 날이었다.
의미 없는, 또는 대책 없는 걱정. 오히려 상대적으로 나아진 상황에서도 각각의 걱정에 사로잡혀 계속 걱정.
나의 습관적 걱정 패턴이 이틀 연속, 샤워 중에 흘러내리는 코피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제는. 정말로. 마음 주기 아까운 것들은 걱정하지 말자고.
그렇게 나는 혼자 오늘 저녁 준비시간이 1시간이나 되는 샐러드를 정성껏 해 먹었다.
가끔 직장 동료가 인스타에 정성껏 차린 밥상을 찍어 올린 사진을 보았다. 대부분 숟가락이 1개씩 있는 것을 보면 혼자 먹는 한 끼일 텐데, 예쁜 접시와 수저받침, 그리고 싱싱한 과일주스도 함께 곁들여져 있었다. 그 동료가 종종 견과류 꺼내먹듯 먹었을 이 건강한 기분을 나는 오늘에서야 느꼈다.
세상 소음을 차단하고, 오롯이 나를 위해서 정성을 다한 한 끼.
누구나 하나쯤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난 글쎄...
예전에는 모든 불을 끄고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본다든가, 팔을 걷어 부치고 청소를 한다든가, 혹은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던가 했었지만 약효가 오래가질 못했다.
내성이 생겨서인지,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고 오늘 나는 그 신약을 발견했다!
오직 나를 위해 재료값과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은 건강한 한 끼. 초록 초록한 샐러드 한 끼.
그래서일까.
갑자기 이달 말 정년퇴임하신다는 전에 모시던 직장 상사가 생각나 마음을 다한 문자를 보냈고, 자주 가는 블로거가 진심이 물씬 담긴 글을 올렸길래, 정성스러운 글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며 강가로 뻗은 풀숲에 핀 노란 들꽃을 보고는 혼자 소리 내서 웃고 말았다. 분명 자전거를 탄 날이라는 건 나에게 그리 좋지 못한 날이었을 텐데, 자전거를 탄 이유는 생각나지 않고 그 꽃을 보며 했던 생각만 진하게 기억된다.
"넌, 세상에 태어난 몫을 다 했구나. 내가 너를 보고 이렇게 기뻐하잖니.
기특하게 거기에 꽃피어줘서 고마워."
오늘 보낸 내 문자에, 내가 단 댓글에 그분들이 단 1초라도 기뻐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하루를 사는 이유를 다 한 것일 게다.
추석이 머지않아 엄마한테도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명절이란 게 좋은 것이, 귀찮음이 불쑥 먼저 느껴지지만 막상 가족들을 만나 끼니를 같이하고 도란도란하다 보면, 가슴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메마른 마음을 흠뻑 충전하게 해 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통화를 하지만, 300킬로나 되는 거리에 놓인 기지국들이 많아서인지 이 찌릿한 감성까지 전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매번 명절을 보내고 올라오는 길은 타향살이 15년 차 가난한 직장인의 마음에도 여유가 흘러넘친다.
삼십 분간 이어지는 통화 말미에 엄마는 한 달쯤 전에 작은 아빠가 다치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작은 아빠는 우리 집 지척에 사시는데, 어릴 적에는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고, 지금은 나야 서울에 살지만 엄마 아빠와 항시 오가며 우리 집을 둘러 살피신다. 서울살이에도 엄마 아빠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아빠 덕택일 것이다.
그런 작은 아빠가 우리 과수원 일을 돕다가 다리가 다치셔서 한 달째 붕대를 감고 다니신다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늘 나쁜 일을 숨긴다. 그래서 이번 여름 폭우 때 엄마가 미끄러져서 복숭아뼈에 금이 갔었다는 사실도 며칠 전에야 알았는데, 오늘에서야 작은 아빠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엄마는 이제 다리가 거의 나아가기 때문에 입을 여셨던 것이었을테다.
자식이 걱정하는 게 싫어서 말을 삼키는 부모의 마음도 마음을 이해하는 만큼, 나는 자식으로서 식구들이 아픈 것이나 이모저모 고생하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쓰나미처럼 견뎌낸다.
"엄마 전화 끊어봐. 작은 아빠한테 전화해 볼래."
하고 부리나케 전화번호를 누른다.
작은 아빠에게 사고는 이미 한 달 반 전 일어난 일이지만, 나에게는 지금 일어난 일이기에 서둘러 목소리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좀 괜찮아. 일주일이면 나을 것 같아서 그냥 견뎠는데 한 달을 갔네."
작은 아빠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씁쓸하다.
"작은 아빠도 이제 곧 환갑인데. 당연하지 뭐."
이 짧은 한마디를 하면서 삼십 년 전 작은 아빠가 스쳐 지나간다.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작은 아빠가 나를 학교에서 집에까지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20대 중후반이었던 작은 아빠는 중고 프린스를 몰며 최신가요를 동네가 떠내려가게 틀고 다녔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작은 아빠 차 뒷좌석에 타면 귀청에 울려 퍼지는 룰라의 '3! 4!'와 손잡이를 돌려 내린 창문을 통해 쏟아지던 바람과 햇볕에 가슴이 두근두근 했었다.
작은 아빠는 오토바이도 좋아했는데, 결혼 날짜를 다 잡고 기다리던 중 큰 사고가 났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깁스한 다리를 올리고 있던 작은 아빠는 퇴원하고도 얼마간은 다리를 절었고, 우리 동네 조기축구회는 실력 있는 공격수를 잃었야 했다. 작은엄마와 작은 아빠가 결혼식을 뒤늦게 하게 된 것도 이 사고 때문이었다.
작은 아빠는 작은엄마와 청춘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연애를 했었나 보다. 학교 선후배였던 작은 아빠와 작은엄마는 졸업 후에 연애를 하게 됐는데, 중학교 시절 나는 아무도 없는 작은집에서 몰래 젊었을 적 두 분이 주고받았던 연애편지를 훔쳐보며 낄낄대곤 했다.
우리 엄마는 못 먹게 했던 라면을 작은 아빠는 박스로 쟁여두고 먹었고, 작은 아빠가 라면을 먹을 때면 한입 뺏어먹는 맛이 꿀맛이었다. 어린이날 마론인형을 선물해 준 것도 작은 아빠였다.
이런 작은 아빠가 이제 곧 환갑이고, 예전 같으면 쉬이 나을 것도 한 달이나 걸려 겨우 차도가 생긴다는 사실에 서글퍼진다. 막 갈아 낀 형광등 불빛 같았던 작은 아빠의 청춘을 보고 자란 내가 잠시 등 돌려 앉은 사이 필라멘트가 다 되어 누런 빛이 맴도는 작은 아빠의 환갑 즈음을 마주하자니, 눈이 시려온다.
코피로 시작된 아침에 나를 위한 샐러드를 만들며 걱정을 뽑고 건강한 마음을 심었지만, 작은 아빠가 아프다는 소식에 다 내팽개치고 나는 작은 아빠를 걱정한다.
아니, 온몸과 마음으로 걱정하겠다.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걱정들을 다 거두어 내 소중한 사람에 모든 걱정을 쏟아붓겠다.
걱정은 힘이 없지만 걱정하는 마음이 똘똘 뭉치면 원기옥이라도 되어 아주 작은 진전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며칠 후 할미꽃 같은 우리 시골집에 가면 엄마 아빠도, 작은 아빠 작은엄마도 다 볼 것이다. 겨우 일 년에 두어 번 마주 앉아 밥 숟가락을 뜨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만 나는 이번 명절에도 얼마나 벅찬 감정과 여유를 가슴에 담아올까 생각하면 벌써 미소가 지어진다.
부디 이 작고 허름한 행복에 걱정이 없기를 걱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