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에세이

부끄럽고 초라한 나를 게워내기 위해 쓰는 일기

by 쓰는사람전볼

유독 마음이 힘든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주어진 일을 하고,

가끔 울리는 단체방의 메시지들에 깔깔대는 심드렁한 하루.


수시간 수십 분 수초 간 셀 수 없는 많은 화살촉들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겠지만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할 만큼 평온한 하루였는데

나의 머리에 명중한 단 한 발의 화살촉. 심지어 나를 겨눌 의도조차 없었던 뭉툭한 화살촉이었다.

같은 날 입사한 동기가 신혼집을 알아보는데,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가 월세가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를 했다.

동기는 알고 보니 집이 세 채인데, 날짜가 맞지 않아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살 집을 구하는 중이었다.

현명한 여자 친구는 비싼 월세는 낭비라며 조사해 간 집들을 다 빠꾸 놓고 있다고 깨가 쏟아지는 푸념도 했다.


내가 왜 이 이야기에 내상을 입게 됐을까.

같은 7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나에겐 세 채의 집이 없어서 일까.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없어서일까.

160센티 신장에 내 배알은 몇 센티나 되길래, 나는 하루 종일 그와 나를 비교하며 힘들어했다.

표면적으로 부러움에 힘들어하는 나와, 이러한 쪼잔한 그릇을 가진 나를 쪽팔려하는 나.

이중 타격이었다.


부상을 입은 채 퇴근하는 길.

집으로 가는 두 개의 버스 노선이 있다.

나는 어플로 버스가 각각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한 후, 더 빨리 도착하는 버스를 잡아 탔다.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 그때였다.

한두 정거장 뒤에 있어 타지 않았던 그 버스가 내가 탄 버스 옆으로 휭 지나갔다.

아. 이런...


그때의 그런 기분을 느끼는 나를 보는 나의 감정은...

나는 왜 그깟 버스와도 경쟁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자각한 것도 그때였다.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데.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내 밑바닥.

심리상담을 받아볼까도 싶었지만, 나의 경험과 나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의 입으로

나의 상태를 재단받고 싶지 않았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 역시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었던 친구를 먼저 성공시키기 위해

수년간 감자 캐는 일을 하며 뒷바라지 해, 정말 친구를 유명한 화가로 만들었는데...

정작 자신은 손이 감자처럼 굵고 둔해져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가슴 먹먹해지는 어느 우정에 관한 이야기처럼, 내 옆에 마음 나눌 친구가 있었다면 위로를 받았을까.


아니다. 내겐 그런 친구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감자 같은 주먹이 되어 준 적이 없으니까...


설사 있다한들 그럴 수 없다.

지금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이야기해서 그에게까지 나쁜 에너지를 전가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그를 위한 생각일까.

가진 것 없는 나의 주머니를 털어 보이는 것에서 나아가 꼬일 대로 꼬인 내 가슴팍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


마음속에 두 가지 인간이 존재해 24시간을 48시간으로 산 것만 같이 지친 하루다.

나를 치유하고 싶은데. 스스로를 토닥이고 응원하고 싶은데.

내가 아는 방법은 고작 글을 쓰는 것.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서 선생님에게 혼난 친구가 혼자 훌쩍이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그 아이가 반항한다고 생각하고 더 화를 낼까 조마조마하게 보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은 그 아이는 지금 순간의 감정을 피아노를 치며 혼자 풀어내는 것이라고 나직이 말했다.


그때 그 건반을 두드리던 조막손처럼.

나도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 불안하고 초라한 감정을 모두 다 풀어내고 싶다.

오직 그러기 위해 쓰는 오늘의 에세이.

나를 위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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