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기는 방법

아름답고도 잔인한 꿈에 대하여.

by 쓰는사람전볼

어제 뉴스 기사에서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비극적 이게도 정말 대단하다 생각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그가 하산 중 실종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접했다.

어제 완등 기사 속, 웃고 있던 그의 사진이 오늘 사고 기사에 그대로 첨부되어 있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그는 대학 때 산악부 활동을 하며 등반을 시작했고, 손가락도 30년 전 등반 사고로 잃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아... 열 손가락을 잃고도 다시 산에 오르는 뜨거운 저 열정.

그것은 꿈이기 때문일 것이다. 히말라야를 정복하겠다는 꿈. 꿈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랴.

약 40년을 꿈을 좇은 산악인은 꿈을 이룬 지 단 하루도 되지 않아 크레바스에 추락해 버린 것이다. 마치 꿈을 이룬 기쁨을 만년설에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


나는 꿈이 아름답다는 말에 반대한다. 꿈은 아름다우나, 분명 이토록 잔인한 것이다.


나의 꿈은 작가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된 그 꿈을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꿈꾸고 있다.

가슴속에 작은 파란 새 같은 꿈 하나 없는 남자는 멋지지 않았고, 꿈에 소홀한 채 흘렸던 시간은 낭비인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꿈에 중독된 듯, 매 순간 꿈을 품고 살아왔다.

꿈은 매우 아름다워 꿈을 품은 사람까지 아름답게 만든다.

꿈이 꿈을 꾸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존재가 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더 열심히 인생의 페달을 돌릴 수 있도록 꿈이 스스로 동력원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지구 상에서 꿈과 사랑, 오직 둘만이 할 수 일이다.


그러나 나는 꿈이 매혹적인 진짜 이유는 꿈꾸는 사람을 미완성의 존재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은 계속 전진하는 삶이고, 이는 곧 미완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완성은 젊음, 청춘과 맞닿아 있다.

즉, 꿈은 꿈꾸는 사람을 성취의 결핍이라는 면에서 평가절하시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결핍은 청춘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꿈을 꿀 때 나는, 십 대 이십대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을 느낀다.


사람들이 이 '미완성-청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감정'에 중독되어 꿈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하면, 이제 꿈은 사람을 살리기도, 또 죽이기도 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다.

꿈이 꿈꾸는이 와의 역학관계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꿈에 중독된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서든 살아간다. 꿈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반면 꿈이 아득하게 느껴졌을 때 찾아오는 공허함으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또 꿈만 보며 달려왔음에도 꿈은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고,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꿈 말고는 모든 것에 소홀했기에 주변에 사람도, 다른 능력도 없는 자신을 자각한 나머지 외로움과 막막함에 한순간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꿈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떠오르지 않는 문장을 붙들며 밤을 지새우는 피로, 그렇게 쓴 글을 공모전에 제출하고 난 후의 설렘, 결과 발표를 보며 밀려오는 실망감. 나 역시 이처럼 꿈에 사로잡혀 시간과 감정을 휘둘리며 살아간다.

이쯤 되면 억울하다. 내가 선택한 꿈이 나를 지배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이 열위에 있던 관계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내가 스스로 꿈을 버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버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내가 꿈에게 부여한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꿈의 손아귀 붙들렸던 머리채가 탁 풀리는 듯 한 기분을 느꼈다.


얼마 전 나는 뇌수술을 받았다.

장작 4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동안, 나에겐 꿈조차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병실을 나간다면 꿈이라는 괴물이 가져온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내가 꿈을 버린다 한들, 꿈은 나에게 아주 작은 스크래치도 남길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오히려 꿈을 좇는 동안 가치 폄하해 온 밥벌이, 오직 그것만 든든하다면 나는 자유자재로 살 수 있는 몸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뻗치자 꿈이 어느새 내 발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완벽한 승리였다.


그렇다면 퇴원 후 내가 작가의 꿈을 버린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글을 쓰며 행복감을 느낀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지 스스로 그 꿈을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이며, 언제든지 그 선택권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 뿐.


어쩌면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말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꿈마저 생각에 따라 내 머리 꼭대기에 오르기도, 발뒤꿈치에 붙어 대롱 거리기도 하는 걸 보니.

그러니 꿈꾸는 아름다운 이들아, 잊지 말자.

꿈을 이기는 방법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라는 것을.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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