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손녀

2019.11월에 나를 소개하는 글

by 쓰는사람전볼

첫 번째 주제, <나에 관하여>를 듣는 순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저에게 할머니는 정지용의 향수 같은, 그런 이야기이거든요.



저와 60 갑자 띠동갑이었던 우리 할머니는 그 많은 손주들 중에서 저를 가장 예뻐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저 역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 할머니였고, 지금도 이렇게 할머니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을 보니 여전히 저는 할머니를 가장 좋아하나 봅니다.


봄이면 할머니 집 뒤꼍 살구나무에 살구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제일 먼저 제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였습니다. 살구나무 옆으로 쭉 펼쳐진 화단에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튤립들이 줄줄이 피었는데, 행여 동생들이 꽃을 꺾기라도 하면 난리가 났지만 제가 꺾으면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던 할머니였습니다.

학교가 파하고 할머니와 함께 바구니 들고 쑥캐러 다니던 기억과 마을 옆 대나무밭에서 순한 죽순만 골라 따다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토란국을 끓여주시던 기억, 할머니가 만든 고추장아찌, 그리고 손가락 마디가 몸통보다 두배는 두꺼웠던 거칠었던 할머니의 손. 할머니와의 기억은 미각과 촉각으로도 생생합니다.


어린 저는 엄마방을 놔두고 늘 할머니방에서 잤습니다. 8시 반쯤 하던 드라마를 함께 챙겨 보다가, 드라마가 끝나면 이불을 가지런히 깔고 눕습니다. 자기 전, 동화책에서 읽었던 이야기, 만화영화, 또 이야깃거리 없는 날에는 대충 지어낸 이야기들을 할머니한테 해 주었습니다.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를 종알대던 어느 겨울밤이 생각나네요.

할머니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제가 할머니한테 할머니 젊었을 때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었는데, 어린아이였지만, 나중에 할머니가 죽으면 세상에 없어질 이야기들이 너무 아까워, 내가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곱씹어 기억하는 할머니의 이야기.

일본 놈들을 피해 푸세식 화장실 똥통에 대롱으로 숨만 쉬며 숨은 이야기, 겁이 많은 중학생 아빠를 매일 십리 밖 학교까지 데려다준 이야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할머니는 잔다는 귀띔도 없이 코를 드르렁 곱니다.


할머니 집을 떠나게 되던 날, 자주 오겠다고 할머니랑 깨끼 손가락을 걸었죠.

엄마 아빠를 따라 이사 간 곳은 할머니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곳이었습니다. 학교 끝나면 할머니 집에 들러서 저녁을 먹고, 어두컴컴할 때쯤 우리 집으로 가는 식으로 한 달, 두 달...


그러다 엄마 심부름할 때만 할머니를 봅니다.

그러다 전화로만 할머니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다 할머니를 언제 봤더라...


여름 방학 때였나, 한참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어요.

"할머니! 어떻게 왔어!"

"보고자 파서 왔지."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언덕진 우리 집까지 걸어오셨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아프네요.


하지만, 이후로도 저는 제 인생을 살았습니다.

기숙사가 딸린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대학을 서울로 왔고, 고시 공부를 했고, 명절에 집에 한번 내려갈까 말까 하며 치열하게.

저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할머니의 시간도 흘렀습니다.

할머니는 치매가 왔고, 급기야는 딸자식도 못 알아보고 화를 내고, 고모를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저만은 알아보았죠. 제가 가면 "보라"라고 하고, 손을 잡아도 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의리 있는 사이였습니다. 치매도 큰 손주는 못 건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가진 것도 없었지만, 그마저 덜 저버리고 떠나려는 듯이 야위어 갔습니다.

이제는 뼈만남아 앙상했고, 저와의 우정도 무거워 떨쳐버리기로 했나 봅니다. 저를 보고도 못 알아보는 할머니를 보며, 얼마나 서운하고 밉던지.


할머니는 날이 좋은 가을에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 집 뒤에 있는 선산에다 온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하관을 하고, 분봉을 덮고, 그 앞에서 절을 했습니다.

두 번 허리를 굽히고 일어나는 장대 같은 자식들 머리 위로, 흰나비가 유유히 날아갔고, 저는 뒤늦게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40킬로도 안 나가던 우리 할머니가 낳은 다섯 자식들과 그 자식의 자식들은, 마른 포도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포도알처럼 그렇게 각자 살아갑니다.

저도 그 포도알 중에 하나, 여윈 포도 줄거리에서 나와 토실토실 살아가는 박애순 씨의 손녀 전보라입니다.



2019.11.20.

나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나는 흰나비를 볼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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