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노포를 그리워하며
종일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하늘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기라도 한 듯 꾸물꾸물하더니 기어이 비를 쏟아냈다.
참았던 속엣말을 토해내듯 시원하게 퍼붓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비는 조금 내리고 그쳤다.
겨우 입을 뗐지만 적절한 단어랄지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아니야.”하고 말았던 내 모습처럼.
낮의 비가 무더위를 가시게 하진 못했지만,
습습한 날씨 핑계로 모둠전에 막걸 리가 먹고 싶단 생각과
그와 동시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추억을 데려왔다.
대학교 3학년 때 만났던 첫사랑, 가난한데 착하기만 했던 그 사람과 자주 가던 서울대입구역 근처 전집에 관한 기억이다.
남자 친구 자취방 근처에 있던 그 전집은 허름한 노포였는데 우리는 주로 빈대떡을 시켜 먹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 알콩달콩 전에 막걸리를 먹던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남자 친구가 속상하게 한 날이면 혼자 가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날도 있었다.
환갑 정도 돼 보였던 주인아줌마는 처량한 척 앉아있는 내가 귀여워 보였는지 그놈 못 쓰겠다며 내 편도 들어주고, 입이 심심할세라 양배추 샐러드나 당근, 오이 따위의 기본 안주를 쉴 새 없이 내다 주었다.
그러면 고작 스물서너 살이던 나는 고개만 끄덕하고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말없이 눈물 젖은 빈대떡을 먹었다.
내 옆에선 정말 세상 다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고된 일과 끝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레트로 바람을 타기 전의 노포는 그렇게 가난한 대학생과 가난한 노인이 돈걱정 없이 눈물과 땀을 씻어내던 공간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곳을 스물서넛의 나는 뻔질나게도 드나들었었다.
과연 그 가게가 아직 그곳에 있을까?
주인아줌마는 이제 일흔은 족히 넘었겠지? 장사를 계속하실 수 있을까 과연?
을지로를 힙지로로 만들고, 문래동 철물공장을 문화창고로 변모시킨 유행과 자본의 바람이 그곳에도 불었다면 주인아줌마의 가게가 굳건하게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예전의 노포가 아닌 새끈 한 막걸리 헌팅 포차로 변모해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에게 방문하는 발길처럼 불현듯 그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구석진 테이블에 혼자 앉아 모둠전에 막걸리 하나를 시키며 말하고 싶다.
“나의 십여 년은 이렇게 흘렀습니다.
주인아줌마, 그리고 전집은 같은 시간 어떤 세월을 보냈나요.”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 주인아줌마의 손을 꼭 잡고 싶다.
그 시절의 나를, 내 사랑을 기억하는 증인을 만나고 싶다.
오늘 저녁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마법의 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이름도 주소도 희미해져 버린 그 가게를 찾아 서울대입구역 주변을 어슬렁거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