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속에 파 묻혀 죽고 싶다
하루는 동생이 물었다.
"언니는 죽으면 제사상에 무얼 올려 줬으면 좋겠어? 가장 좋아하는 음식 말이야."
나보다 일찍 결혼한 동생은 시댁 제사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라며 멜론을 상에 올린다는 게 신기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맥주랑 커피."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밥보다 자주 먹는 것이 있다면 맥주와 커피 딱 이 두 가지니까.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는 자식이 없으니 제사상을 받을 리 만무하지만 누군가 내 제사를 지낸다면 무척이나 간편할 것이다. 편의점에서 만천 원에 네 캔 하는 덕덕 맥주와 산미 강한 아메리카노만 놓아준다면 나는 귀신일지라도 흔쾌히 누군가의 앞에 짠! 하고 나타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한 가지 덧붙이지 못한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책.
그러니까 내 제사상에는 맥주와 커피와 책 한 권이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책은 어떤 장르든, 무엇에 관한 것이든 좋다.
요즘 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이니.
그렇게만 해 준다면 귀신 된 몸이지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그 기분에 취해 맥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들 것도 같다.
나에게 있어 맥주와 커피는 없으면 화가 나는 것이라면 책은 있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다. 말하자면 맥주, 커피는 필수재, 책은 사치재랄까. 물론 반대의 경우라면 내가 더 멋있는 사람이었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생겨 먹은걸.
나와 책은 참 이상한 관계다. 나는 소위 독서광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릴 때 다독을 한 것도 아니다.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나에게 말할 수 없는 풍요로운 기분을 가져다준다. 얼마 전에는 문득 이런 생각까지 했다. '활자 속에 파 묻혀 죽고 싶다..!'
어느 퇴근길에 '어서 가서 책을 읽고, 글도 끄적여야지.'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경쾌하게 빨라지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 마음엔 흑과 백, 흰 종이와 검정 낱자들이 흩뿌려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음표가 떠다닐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는 것마다 한 폭의 그림일까 생각하면서 내 마음속에 둥둥 떠다니는 글자들에 돌멩이들 매달아 놓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 낱자들이 용솟음치듯이 올라왔다가 다시 촤르르 부서진다.
그리고 그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주어 담는 나의 글쓰기.
무얼 쓰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그저 쓰다 보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완성되는 조각조각의 향연일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계획하고 쓰는 글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이런 마음 상태를 끄적이고만 싶을 때가 더 많다. 둥~ 둥~ 둥~. 글자는 떠다니고.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고. 그래서 무슨 말이라도 쓰고 싶고.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퇴근길에 밀리의 서재에서 만난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 한 구절이 나를 채찍질한다.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호두과자 기계는 호두과자를 만들지만, 인사하는 기계는 인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꺼림칙한 마음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고.
글을 쓰는 기계란 세상에 없고 재능이 나를 대신해 소설을 써 주지 않는다고.
그러니 쓰라고... 무엇이든 쓰라고..
"읽는"행위 만으로 마음에 무지개가 뜨는 나인데,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 첫 장에서 이런 글을 읽다니!
쌍무지개다!!!
읽지 않으면서 쓰고 싶단 말을 하는 건 자만이라면
쓰지 않으면서 쓰고 싶단 말을 하는 건 불경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이치가 그런 게 어딨 나.
로또를 안 샀는데 어떻게 당첨이 되나?
사랑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애를 낳나?
게으른 바보처럼 내가 그랬나 보다.
글을 쓰고 싶다 열망하지만, 게으른 바보처럼 로또도 안 사고, 사랑도 안 했다.
올해엔 한 푼 한 푼 저축을 하듯이 나의 글에 제목을 달고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 먼지 같은 글자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겠지.
전혀 가치 없는 글이지만 누군가에게 읽혀 감동을 주는 순간,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나의 글쓰기.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한 사람으로 나의 가치를 승격시켜주는 나의 글쓰기.
그렇다면 당장 돈은 안된다 해도 영 효용이 없는 것은 아닌 나의 글쓰기.
어차피 인생,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일으켜 주는 글쓰기,
나를 마음 부자로 만들어 주는 글쓰기,
부지불식간에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줄 글쓰기.
나는 왜 이토록 쓰는 것을 갈망하는지 모르겠으나,
안데르센 동화 속 빨간 구두 소녀가 발을 잘라내고서야 춤추는 것을 멈춘 것처럼
손이라도 절단해야 멈출 것만 같은 나의 글쓰기.
이어나가는 “읽기” 속에 나의 “쓰기”에 기름 붓는
김연수 작가님의 목소리를 마저 덧붙인다.
인생 역시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인생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이 이야기가 계속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에 대답해야만 하리라. - <소설가의 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