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 VS 각색, 그리고 흑우들?

일본 영화의 딜레마, 아니, 일본 미디어 믹스의 딜레마일까?

by 배지성
d0034443_51c57da986430.jpg 일본 만화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름은 들어봤을 작품, 강철의 연금술사의 주인공 에드워드 엘릭

내가 처음 '강철의 연금술사'를 접한 건 중학교 1학년, 2003년이었다. 초등학교 친구의 추천을 통해 접하게 된 그 만화는 완결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띵작'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이다. 나는 이 만화를 통해, 흔히 말하는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 일본 문화의 홍수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일본은 OSMU (One Source Multi Use =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장르로 재생산하는 것)의 선두주자 중 하나이다. 이른바 미디어 믹스라는 용어로도 설명되는 이 작업은 만화를 애니로, 게임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 하나의 IP를 통해 다양한 수익구조와 콘텐츠를 재생산해내는 것을 뜻한다. 언제부턴가 일본은 만화책, 소설 등의 원작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을 통해 TV를 통한 대중으로의 전파를 이루고, 이를 통해 인지도와 수익을 다시 다른 장르로 구성해 콘텐츠의 깊이와 범위를 넓히는 작업을 진행한다.

복수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영화, '올드보이'가 일본 만화 원작이라는 내용은 이젠 신기하지 않은 내용이다. 문제가 되었던 일본의 영화 '배틀로얄'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릴 있게 지켜본 '데스노트'도, 이젠 하나의 컬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마블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도 모두 일정한 원작을 토대로 새롭게 구성된, OSMU의 대표라고 볼 수 있겠다. 만화가 되었든, 라이트노벨이 되었든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발현되는 순간 막강한 파급력을 갖춘 코어 콘텐츠로 화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일본 영화를 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하나다.


'왜 이걸 영화로 만들었지?'


sl80kg17720is4528e91.jpg 팬들이라면 다분히 충격이라고 느낄 만한 강철의 연금술사 실사 영화

영화로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원작들, 아니 그 원작들 대부분이 이전에 히트를 기록한 만화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큰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이런 일본 영화의 문제점은 스폰서와의 관계로 인해 흥행이 보증되는 것만을 영화화하는데서 출발하게 된다.


즉, 독립 영화의 지속적인 지원 축소 추세 속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자들은 금전적, 사회적 압박에 의해 흔히 말하는 만화 원작 작품들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는 다시 역효과를 일으켜 더욱더 일본 영화의 근간을 위협하는 형태로 되돌아오게 된다.


한정된 자원, 시간 속에서 누구나 만족시킬 충분한 퀄리티를 갖추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특히 원작이 있는 작품들은 '원작 그대로'와 '각색'의 기로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특히, '만화 및 라이트노벨 등의 원작'을 영화화하는 경우에는 이런 줄다리기가 더 심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원작 그대로의 요소를 살릴 것인가 혹은 영화를 위해 적당히 각색할 것이냐를 두고, 대부분의 일본 영화가 선택한 것은 '원작 그대로를 따라간다'였다. '일단 원작처럼 만들자! 그럼 사람들이 봐줄 거야!'라는 뜻일까?


그리고 그 결과물은 정말, 정말 최악이었다.


창작물, 특히 연극과 영화 같은 허구의 스토리를 구상해 실제 인물들이 연기를 해야 하는 장르들은 시간, 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는다. 영화, 연극이 전달하는 이야기의 길이는 3시간을 넘기가 힘들고, 연극은 좁은 무대 안에서 각 이야기의 배경을 그려내야 하며, 영화는 그보단 자유롭지만 현실의 어떤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촬영기법이 도입되는 것은 뒤로 미루자.

어찌 됐든 현실의 인물이 연기를 하는 만큼, 장소의 경우도 이야기에 맞추어 어느 정도 현실감 있게 그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장소가 현실감을 갖기 시작하면, 주변 소품, 조연, 그리고 주연 역시 현실감을 갖춰야 화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위화감 없이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들은 위와 같은 요소들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적당히 예쁘고 잘 생긴 아이돌 배우와, 조악하게 따라한 만화 원작의 요소들의 어설픈 구현과 CG 처리로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을 생성하고 있다.

바로 옆, 우리나라를 보면 어떨까? 가장 간단한 예로, 흔히 쌍 천만 작가라고 불리는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시리즈를 비교해보자.

%EC%8B%A0%EA%B3%BC-%ED%95%A8%EA%BB%98.png 유명 웹툰, 신과 함께를 원작으로 한 영화, 신과 함께 죄와벌

같은 만화 원작임에도, 그 영화가 내포하는 뉘앙스와 메시지는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영화라는 매체에 맞춰 캐릭터의 디자인을 매력적으로 다듬고, 이야기의 뼈대를 바꾸고, 서사의 진행과 맞춰 영상미를 새롭게 구축해냈다. 단순히 만화를 있는 그대로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매체에 최적화된 형태로 이야기를 다듬고, 이미지를 다듬고, 연출을 다듬어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에도 이런 각색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반면교사가 존재한다. 바로 신과 함께처럼 웹툰을 바탕으로 영화화한 작품, 패션왕이 있다.

201409281140593922_l.jpg 두 작품간에서 보여지는 이 간극...

패션왕은 망했다. 만화라서 허용되는 수준의 내러티브를 영화라는 매체로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사 영상으로 느끼기엔 너무 과장되었고, 현실감이 없으며, 더욱이 세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에서 오는 억지 고증이 바로 우리가 패션왕을 보며 느끼는 그 무언의 압박인 것이다.


chamedu_97112_1[1].jpg 과연 일본에서 배틀로얄과 같은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분명 일본 문화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서브컬처의 IP들은 여전히 막강한 파급력을 갖추고 있다. 만화로 시작해 게임, 장난감, 애니메이션, 심지어 파칭코까지 넘나드는 이들의 Media mix는 가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으로 손을 뻗어놓았다. 대박 난 작품 하나가 소규모 출판사를 중, 대기업 사이즈로 키울 수도 있고, 무명작가를 단숨에 돈방석에 앉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작품들의 매니아들은 자신들을 자조적으로 '흑우' (호구의 은어), '개돼지'라고 부르며 팬심에 퀄리티가 떨어지는 이 매체들을 구매하곤 한다. 아무리 원작이 대단하더라도, 여기서 파생된 미디어 믹스들은 그 퀄리티가 보장받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속된 말로 콘크리트와 같이 두꺼운 충성고객이 무조건적으로 구매할 테니, 퀄리티는 상관없음을 이 제작자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처럼 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곳에서, 소비자인 우리가, 매니아인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른 형태로 소유할 수 있다는 유일한 의미만을 지니는 그 결과물들을 퀄리티가 떨어짐에도 구매해야 하는가?

그 의미에 대한 가치부여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제2, 제3의 강철의 연금술사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로 사족을 달고 싶다.


" 제발 팬이라면 이 영화를 보지 마세요. 이 게임을 하지 마세요. 아니, 이 매체를 사용하지 마세요.

이게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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