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제 하루만 사는 사람처럼 살고 싶다.
2018년 12월 31일, 우리 부부는 뉴욕 브루클린의 한 호텔을 예약했다. 아침부터 집 대청소를 말끔히 하고 간단히 짐을 챙겨 호텔로 떠났다. 고작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 브루클린과 맨해튼 뷰가 모두 보이는 방이었다. 매년 12월 31일 타임스퀘어에서 열리는 Ball drop 행사때문에 복잡한 뉴욕시티에서 웬만큼 떨어진, 우리가 3년 동안 지냈던 뉴욕과 브루클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 곳. 집세 높은 뉴욕에서 살면서, 게다가 연말 호텔값은 '헐'이었지만. 2018년의 마지막 날이 온 게 믿기지 않을 만큼 2018년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해였기에 우리 둘에게 선물도 주고 싶었고, 2019년은 2018년과는 조금 다른 한 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까운 여행을 감행했다.
우리에게 2018년은 다사다난한 해였다. 2018년 연초에 영주권을 받았고, 우리 둘 다 이직을 감행했고, 한국에서 결혼식도 치르고 왔다. 그리고 오늘로써 미국에 온 지 딱 3년이 되는 날이 되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미국 이민 결정 이후, 매달 해결해야 하는 미션을 갖고 살았기에 우리는 매달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인 하루 하루를 보냈다. 2018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그 미션의 종지부처럼 느껴진다.
남편은 나에게 2018년의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매달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과 우리의 모습을 담은 무려 1시간 45분짜리 영상. 그리고 나는 2017년, 2018년 새해 때 썼던 우리의 한해 목표를 적었던 글과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전화번호, 크레딧카드, 비자 및 영주권 히스토리들을 모두 정리하여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매달 산 넘어 산. 우리에게는 매달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2016년은 인턴 비자를 가지고 이직을 감행했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에 더하여 비자도 옮겨야 했으므로 그 또한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어찌 저찌 회사에서 영주권 스폰을 받을 수 있게되었고 변호사를 만나 영주권을 준비하고, 트럼프의 이민 정책에 숨죽이며 불안해하던 시기. 결혼을 하면서 둘이 똘똘 뭉쳐 하루 하루를 견뎌낼 수 있던 한 해였다. 2017년은 영주권 수속을 하나 하나 밟아나가면서 서류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케바케인 수속 기간에 기다림의 연속, 그리고 회사 적응도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2016년과 2017년을 보내며....
2017년의 마지막 날, 우리는 몬탁의 바다 끝 등대에서 2018년의 첫 해를 보러 출발했다. 저녁 즈음 출발하여 4시간 반을 달려갔지만 머물 곳이 없어 차 안에서 2시간을 덜덜 떨다가 집으로 차를 돌렸다. 다행히 집에 도착하여 떡국이 완성될 즈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우리의 미숙한 여행 계획을 생각하며 키득거렸다. 바닷가라면 카페 정도는 하나 있을 줄 알았는데 12월 31일, 1월 1일에 여는 곳은 전무했다. 우리의 미국 생활은 이렇듯 하나하나 하는 것마다 미숙했다. 그 미숙함을 함께 할 수 있고, 함께 극복할 수 있기에 참 다행이었다.
2018년 초, 영주권이 왔다. 영주권을 받은 사람은 이 카드 하나가 그렇게 소중했었나 하며 허무해한다던데. 난 소리를 지르며 날뛰듯이 기뻤다. 영주권 카드는 남편보다 내가 한달 더 먼저 받았는데 기뻐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오히려 '당연히 나올 줄 알았지 않냐'라는 표정으로 무덤덤했었고, 그런 그를 보며 '흥, 당신 영주권 나올 때 어떻게 하나 보자.'라며 한달을 기다렸다. 그러나 혹시나 모를 상황이 있을 수 있기에 남편 영주권을 받기까지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남편 역시 영주권을 손에 든 날 웃음이 마르지를 않더라. 거봐라~~
영주권을 받고 나서 소셜 시큐리티도 업데이트하고... 하다 보니 한 달이 훌쩍 갔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직 준비도 했고, 그렇게 4월 이직 완료. 중순까지 적응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내가 먼저 이직한 후, 남편도 이직을 준비했다. 아니, 이직을 준비하기보다는 영주권을 스폰해주었던 회사와 어떻게 잘 끝맺음을 지을지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만 3개월.
영주권을 받고 나니 본격적으로 집을 사려고 보러 다니기도 했다. 몇 블록만 건너면 분위기가 천차만별인 미국. 뉴욕과 뉴저지 모두 활보하면 집을 보러 다녔고, 집을 구매하는 프로세스를 알아보고, 집을 구매할 때 알아야 할 것들과 구매 비용, 유지 비용, 그리고 팔 때의 비용 등등을 알아보고. 몇 달을 그렇게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니다가 우리는 아직 집을 사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러고 나니 또다시 새롭게 렌트할 집도 알아보러 다녔었다.
하루는 둘이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작은 교통사고도 났다.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병원에 가고, 변호사도 구했다. 병원 시스템은 또 뭐가 뭔지. 변호사는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못 믿겠던지... 하나하나 해보면서 머리도 뜯었지만, 그렇게 하면서 또 배웠다. 이노무 미국 생활.
10월 결혼식을 앞두고 여러 업체를 알아보며 결혼 준비도 몇 달 동안 했다. 카톡과 이메일로 미국에서 한국의 결혼식을 준비했다. 드레스 투어를 하고 바로 그날 결정해서 가봉을 하는 스케줄이 가능한지 몇 군데 연락해서 알아보고... 영상, 사진작가도 섭외하고... 부모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 이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결혼식이라기보다는 대형 이벤트 하나를 준비하는 격이었다. 또 한국에 오랜만에 가는 것이니 부모님과 가족을 위한 선물도 하나하나 고르고 사고...
2018년 한 해동안, 한국에 살았다면 절대 겪지 않을 일도 있었지만, 어디에 살든지 겪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낳고 자란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았을 사소한 일들을 우리는 몸소 부딪혀 가며 배웠다. 그럴 때마다 없던 흰머리가 하나씩 나고 주름도 하나씩 늘었다. 나의 주름 하나하나에는 인생이 담겨 있기에 그다지 싫지는 않다. 그냥 너무 머리 아파하지 말고 웃으면서 남편과 함께 잘 헤쳐나가 봐야지. 그래야 주름 하나 더 생겨도 조금은 예쁜 주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9년부터는 오늘 하루만 살 것처럼 살고 싶다.
2019년 1월 1일. 호텔의 폭신한 침구 속을 헤엄치다 록시땅의 향긋한 버베나 바디샤워로 씻고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윌리엄스버그에서 커피와 간단한 브런치를 먹었다. 집에서도 누릴 수 있는 별것 아닌 것들이 오늘만큼은 왠지 기분 좋은 사치처럼 다가온다. 바람은 많이 불지만 춥지 않은 날씨였다. 상점마다 문이 열지 않은 브루클린의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급 배가 고파져서 우버를 불러 10분 만에 집에 왔다. 동네 냄새가 10분 전의 그곳과 다르다. 마치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간 느낌과도 같다. 집이다. 도착하자마자 냄비에 물을 올리고 가락국수를 해 먹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각자의 랩탑을 꺼냈고 2019년 계획을 이야기하며 각자의 언어로 정리했다. 나는 엑셀에 표를 그리고, 남편은 줄글로 내레이션을 적듯이 적는다.
2019년 계획은 딱히 미국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들은 없다.
영어 공부에 이어 스페인어 공부도 있고, 중국어 공부 계획도 있는데 한국에서도 할 만한 자기 계발 계획이고.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던 것은 이미 항공권에 호텔까지 예약 완료. 매달 국내 여행도 갈까 했다가 이것은 3개월에 한 번으로 바꾸었고, 또 어느 곳으로 이직이 될지 모르니 다음 이사할 곳에서 근교 여행을 자주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음... 친구를 좀 사귀어보자는 계획도 있었는데 조금씩 될 것이라 생각하여 조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특정 산업 그리고 직업군으로의 이직 목표가 있어서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지만, 한 커리어에서 그래도 꾸준히 길을 쌓아오고 있던 나는 오히려 갈 곳을 잃었다. 솔직히 회사 생활을 하고 싶지가 않다는 생각이 내 속마음에 뿌리 깊다. 그렇다고 또 확고한 플랜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출퇴근을 하는 길이 설레었고 기뻤지만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이야기했었다. 같이 붙어있고 싶어서 결혼했는데 회사를 가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떨어져 있네.라고... 만약 아이를 갖는다고 해도 한 사람이 온종일 애를 보고 한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하는 구조는 싫었다. 우리만의 인생을 만들어가면서도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싶다. 평행선을 긋는 것들에 접점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오늘 하루만 사는 사람처럼 살고 싶다.
그냥 딱 2년만 그렇게 살아볼까. 자기야?
매년 목표를 세우고 그 해의 목표를 실행시키기 위해 매달 계획을 세우며 행동했던 나는 아무런 계획 없이 살고 싶다고 다이어리를 버린 적인 딱 한 번 있었다. 대학 입학 때부터 매년 플래너를 샀고 그 플래너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지만, 그 해의 플래너는 첫 6개월간의 종이가 텅 비어있다. 그때가 처음 뉴욕으로 왔던 때였다. 2009년. 대학생이던 나는 어학연수을 위해 뉴욕으로 왔고 반년 뒤 새로운 해를 맞이했을 때, 이제부터는 계획을 세우지 말자고 다짐하고 플래너를 사지 않았었다. 그때 알았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2009년 연초에 사지 않았던 플래너는 6개월 뒤에 결국 사고야 말았다. 그리고 회사에 가서 비즈니스 영어를 배워보고 싶다고 무급 인턴을 여러 군데 지원했다. 1년 반의 어학연수 중 가장 남는 일은 그 인턴 경험이다.
이렇듯 계획 없이 사는 인생은 나와 맞지 않지만, 가끔은 하루만 사는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 그런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무모함. 그 무모함이 없어서 나는 가끔 아주 작은 일에도 굉장히 망설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먼저 하는 일조차 가끔 망설여진다.
하루 사는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사업과 대학원이다. 한국에서 해봤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정도로의 사업을 벌여보고 싶다. 망하면 회사로 들어가 메이크업을 하고, 또다시 시도해서 잘되면 남편도 같이 운영하며 그렇게 하루 종일 붙어있고도 싶다. 대학원도 미국에서 또 가고 싶다. 미국에서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기도 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친구도 하고 싶다. 사업과 대학원. 어찌 보면 이 두 가지는 하루 살겠다고 세운 계획이 아니라, 인생 멀리 보고 세우는 계획인 것 같은데...
있는 돈 까먹을까 두렵고, 남편한테 미안하기도 하는 한편, 아 나 장학금 받고 Stipend로 생활비 벌면서 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흠... 회사다니며 돈 벌고 아기 낳아야만 할 것 같은 이 강박증 속에 소탈하게 내가 원하는 꿈을 그려본다. 정말 오늘 하루만 살게된다면 대학원이든 사업이든 그게 뭔 소용이냐 하겠지? 그런데...그거 왜 진즉 안 해봤을까 후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