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민 후 지인으로부터 내가 들은 말
이제는 작년이 되어버린 2018년, 영주권을 손에 쥐고 한국에서 (미국에 이어) 2번째 결혼식을 올리면서 친지 가족, 그리고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다. 미국에 일하러 간다고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던 이들을 2년 만에 '결혼'과 '이민' 인생의 크나큰 카드를 들고 왔더니 다들 '진짜?'라는 표정으로 말문을 텄다. 그동안 나의 비자와 영주권, 이민, 결혼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자주 만나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을 수 있겠지만... 아니, 사실 한국에 있더라도 자주 만나지 않는 이상 그렇게 모두 다 이야기할 성격도 아니었다. 이런 성격 탓에 나를 오래 알던 친구라 할지라도 갑자기 만나 성공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종종 있었다. 고생스러운 중간 과정은 생략한 채, 즐거운 일, 기쁜 일이 있을 때 친구를 초대하고 찾게 되니 그들은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다. 매일 만나지도 못하고, 나와 같은 상황에 있지 않으니, 시시콜콜한 배경 이야기를 다 해가며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어려웠다. 이래서 대학원 때는 대학원 동기들 또는 대학원을 다녀본 사람들과 그 고충을 나누었고. 사업을 할 때는 사업을 운영 중인 언니와 친구와 술을 마실 날이 더 많았다. 대학 친구나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당연히 중간 과정은 생략된 채 갑작스럽게 나 사무실 오픈했어. 나 무슨 상을 타니 놀러 와서 맛있는 거 먹어.라고 부르면 엥? 너 이런 것도 하고 있었어? 라며 놀라기 일쑤였다. 퇴사를 하거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거나 하는 나의 고민들은 나누지 못했다. 그렇다고 혼자 다 참아내는 강인한 성격도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나와 비슷한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집착해 징징거리는 성격이다.
나의 고민은 어쩌면 누군가에는 그저 복에 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고민이 한때는 나도 부러운 적이 있었으니. 사업을 한다고 씨름하는 것도. 대학원을 가는 것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고민과 고생이 누군가에게는 갖지 못할 사치 같은 것일 수 있다. 게다가 '이민'은 거의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고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았다. 이민에 대해서는 속 깊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으니 나는 2년 만에 짠 하니 나타나 결혼도 하고 이민도 할 거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게 아니라, 이미 결혼도 했고 이민도 했다.라고 또 중간과정 없이 결과만 이야기하니 다들 벙 찔 수밖에. 미국 이민에 대해서는 나도 '노력은 했지만, 어쩌다....'되었기 때문에 가치관의 혼란, 아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라는 막막함과 새로운 도전 앞에 의지를 다지는 중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처음 뵌 많은 (시댁 쪽) 친지들, 그리고 우리 친지의 반응은 거의 2개로 나뉘었다. 찬성과 반대.
진짜 한국 안 와? 미국에서 살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딱 두 종류다.
중, 고등학교 또는 대학생활을 외국에서 보낸 친구들. 또는 시댁 친지 가족들.
오랜 해외 생활을 경험한 친구들은 한국에서 정착하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기 마련이고, 또 한국의 생활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그들은 안다. 해외 생활의 힘듦을 아는 그들에게는 내가 조금은 대견하고 그리고 조금은 안쓰러운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힘든 것들이 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미국에서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분들은 시댁 친지 가족분들이었다. 친정 VS 시댁 인지 나이 때문인 지는 모르겠다. 부모님의 형제분들의 연세가 친정 쪽이 좀 젊으시고 시댁은 좀 많으시다. 세대 차이인지 친정과 시댁의 차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경험으로는 친정 쪽은 대부분 좋다, 나쁘다 없이 잘 살아라라는 입장이셨고 한편으로는 미국 타임스퀘어 스타벅스에서 만나자고 농담도 하신다. 그러나 시댁 쪽 특히 아버지 형제분들은 매달 쌀이라도 보내줄 테니 한국 와서 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싫어하셨다. (물론 내가 직접 들은 얘기는 아니고 남편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들) 시댁 쪽 어머니 형제분들은 아무런 말씀 없이 그저 예뻐해 주셨던 것 같다.
시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이나 형제가 많은 편이시다. 5명은 기본.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형제 중에서도 첫째, 둘째에 속하시고, 시댁은 두 분 모두 막내시다. 특히 시아버지의 가장 큰 형님은 (우리에겐 큰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 비슷한 세대. 그러니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가 어린애들 같아 걱정도 되고,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게 이해도 안 되시는 것 같다.
미국 생활도 힘들겠지만, 힘들어도 미국에서 힘든 게 나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 생활을 하고 싶거나 계획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는 미국 이민이나 비자 등을 알아보았고 향후 언젠가는 미국에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행이든 일이든, 외국 경험이 있기도 하다. 다들 한국에서 업계 최고의 회사에 다니면서도 외국 생활을 계획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미국 생활은 아메리칸드림이라고 말할 정도의 큰 기대와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사생활을 개인적인 것으로 보호받고 싶은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미국 이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또 힘들 때마다 다시금 마음을 잡게도 해주었다.
오늘의 인생을 살자. 알차게 보내든, 그냥 흘러 보내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좋겠다'라고 하거나 '우리 언제 만나지' 정도로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그런다 한들 우리가 스스로 내린 결정보다 그들의 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결정할 것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지인, 친지 가족들의 반응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기에 아쉬운 것도 사실이고, 이렇게 살아 무엇하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우리 둘의 생활에 몰두하고 다른 선입견이나 개입 없이 우리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건 해외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어쩔 땐 어디서 사는 게 무엇이 중요하냐. 신념 있게 사는 게 중요하지 라는 생각도 들고.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고, 여기에 있는 게 사무치게 좋을 때가 있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어디서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누구랑 사는지가 중요한 거지.라고 말한다. 한마디 말도 예쁘게 하는 남편. 나도 남편의 둥글둥글한 성격을 닮아가는 건지 이 말이 점점 이해도 가지만.... 자기야. 가끔 내가 누구랑 사는지 모르겠다.라고 혼동할 수 있는 환경은 싫다... 만약 많은 사람들의 개입이 있다면 그렇게 될걸?
끝이 없는 생각과 결론 없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나면. 우리가 언젠가 한국에 갈 수 있는 거고. 미국에서 계속 살 수도 있는 거고. 그냥 지금 우리 우선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끝을 맺는다.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지금 여기까지 왔고 이제 시작이다. 망설이지 말고 헷갈려하지 말고 또다시 힘을 내서 인생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