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사위 없는, 부모님들의 만남
우리 부부는 미국에서 전화로 부모님께 서로를 소개하고 결혼을 말씀드렸다. 원래는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서로의 예비 배우자를 부모님께 인사드린 다음 다 같이 상견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지만, 우리 두 부모님들은 자식 없이 상견례를 하셔야만 했다.
어쩌다 보니
미국에 오기 전에 남편은 우리 엄마를 뵌 적이 있었지만 사귀기도 전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얼굴 한번 보았고 말 한마디라도 한 기억으로 우리 엄마는 남편을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을 직접 뵙지 않고 결혼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많이 죄송한 일이었다. 그 마음을 풀어드리고자 각자, 또 같이 노력하였고 결국 웃으며 결혼을 축하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준비 과정 없이 갑작스러운 결혼, 이민 결정이 반갑기만 한 부모님이 어디 있을까. 화상 통화를 할 때마다 웃으시던 부모님의 얼굴을 뵐 때마다 나와 남편 역시 죄송스러움에 더 환하게 웃어 보였었다.
우리 둘 없이 부모님들끼리 상견례를 하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부모님들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네 분이 만나셨다. 어디서 만나 실지, 무엇을 드실지,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불안했다. 그 어색한 만남을 우리 없이 네 분께 떠 안겨드리는 것이 너무 죄송했다. 두 집의 중간 지점, 서울 어느 한정식 집에서 네 분은 만나셨다. 인사를 하시고 처음엔 말씀 없이 식사를 하시다가 어머니들의 대화가 이어졌다고 한다. 미국에서 사는 것에 대해,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의 칭찬과 함께 둘이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확인하셨다고. 상견례가 끝난 그날 밤 (우리에게는 아침), 두 부모님들께 통화를 드렸을 때는 한결 풀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상 통화를 할 때마다 항상 웃으시던 부모님께 느껴졌던 찝찝했던, 굳어있던 마음이 상견례 이후 녹아내렸음을, 상견례 날의 통화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시부모님은 나 대신 우리 부모님을, 우리 부모님은 남편 대신 시부모님을 뵈었고, 부모님들을 통해 며느리와 사위가 어떤 사람일지 알게 되셨다고 한다. 왠지 나를 직접 본 것보다 우리 부모님을 통해 나를 본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이렇게 잘 지나가게 되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상견례 이후, 결혼식 이전에 두 부모님들의 만남은 한차례 더 이루어졌다.
그리고 명절 때마다 전화 통화를 하셨고, 결혼식이 끝난 후 우리가 다시 미국에 돌아온 후에도 부모님들은 구정 연휴 즈음 만남을 예정하고 계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명절 때마다 통화하시고 곶감이든 뭐든 선물을 꼭 보내셨었다. 누가 보기에도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연을 맺고 계시다. 두 분의 화합은 나에게는 매우 어색한 조합이다. 외가와 친가. 이모와 고모. 삼촌과 큰아빠. 이렇게 만나기는 어렵지 않나.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머리를 갸우뚱할 정도로 얼굴에 익을 수 없는 그런 만남이다. 그러나 할머니들끼리는 참 친하셨다. 내 결혼식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비슷한 키에 분홍색 한복을 입으시고는 반갑다고 손을 잡고 서로 안으셨다. 우리가 없는 두 부모님들의 만남은 앞으로도 종종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럴 때마다 조금은 불안하다. 생각지도 않은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시'자에 항상 상처 받는 '며느리'처럼 말이다. 그러나 두 부모님들이 은근히 닮은 부분이 많으신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서로 살면서 더 닮아가듯이, 아주 다르지만 비슷하게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둘은 두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는 점에서 만장일치이다. 여전히 귀엽게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아가시는 부모님처럼 우리 둘도 그렇게 살아가자고 생각한다. 아주 조금은 불안하지만 네 분의 만남은 친정과 시댁. 이 두 가정이 얼마나 화목한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