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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olife May 04. 2019

시댁보다 친정에서 느낀 서러움

어버이날, 다시금 생각해보는 결혼 후 부모에 대하여

미국에서 결혼하고, 미국에 살고, 부모님들은 모두 한국에 계셔서 시집살이 같은 건 겪어본 적 없다. 그러나 한국 남자와 결혼한 한국 여자로서, '시'자 들어가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들 정도의 시댁과의 갈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30년간 함께 살았던 우리 가족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분들과 가족을 맺다보면 예상치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일들이 많으며, 내 맘 같지 않는 그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그러나 시댁보다 친정에, 서운함을 넘어 서러움을 느끼는 일도 시댁 못지 않게 종종 발생하고 있다. 


아들은 집 사주고, 딸은 혼수 장만 

우리는 미국에서 간단하게 결혼식을 진행했고, 약간의 예물이 오갔지만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갖춰서 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뒤, 우리는 한국에서 한국식 결혼식을 해야만 했다.  그 때, 집을 살지 고민을 하던 우리에게 양쪽 부모님들이 자금 지원을 해주셨다. 집을 주는 게 아니라 현금으로 주는 것이기에 오히려 부모님께 더 부담이 되셨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오빠가 결혼할 때는 결혼식부터 집까지 모두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다. 나는 그만큼의 지원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집값의 1/4 정도 되는 자금을 받으니 뭔가 서운했다. 요즘은 결혼 해도 여자가 맞벌이를 해야한다, 남자도 살림에 동참해야한다 등등 남녀 차별이 없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시댁이 며느리보기를 '친정에서 사위 보듯'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친정에서도 결혼한 딸을 출가외인으로 여긴다. 


나는 결혼하고나서 '시댁 우선'이라기보다 친정과 시댁. 두 부모님께 똑같이 평등하게 해드리려고 애를 썼다. 용돈을 드리더라도, 선물을 드리더라도 그 값어치에 있어서 차이를 두지 않고, 전화를 드리더라도 항상 똑같이 드린다. 당연히 마음 씀씀이도 그렇다.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오빠 편을 드는 일이 많았다. 물론 첫째라서 손이 가는 일이 많았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오빠 일이라면 동네에서 치맛바람도 날렸었다. 대신 아빠는 딸바보일정도로 나를 예뻐하셨다. 그게 그렇게 기쁘진 않은 게 아빠가 내 편을 들 때마다 엄마는 아빠에게 한 소리씩 했기에 나도 조금은 눈치 볼 수 밖에 없었다. 엄마한테 오빠를 더 좋아한다고 투정을 부리면, 아빠가 예뻐하지 않냐는 말도 듣곤 했다. 엄마가 성차별한다는 게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또 성차별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실 만큼 나에게도 사랑을 쏟으셨다. 하고 싶은 것 많던 나에게 아낌없이 지원해주셨다. (물론 잔소리는 덤이다.) 그래도 막내의 질투심은 끝이 없는 것인지, 엄마가 오빠 이야기를 내게 많이 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엄마가 나보다 오빠를 더 좋아한다는 건 조금은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이게 상처나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끈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엄마가 겪었던 성차별을 되짚어보며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 후, 나에겐 친정이나 시댁이나 같은 선상의 존재였고, 나이를 먹고 돈을 버는 입장에서 두 부모님께 똑같이 더 잘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딸에게는 혼수 장만, 아들에게는 집 장만. 이라는 차별 대우가 서러웠다. 어디서는 지금까지의 결혼 제도를 깨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부모님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너가 애를 낳으면, 다른 성씨 잖아?!


결혼 초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말이 오갔는지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잊고 지낸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충격이었다. 엄마랑 통화하던 중에 엄마가 애기는 언제 가질 생각인지 물었고, 나는 외국에서 우리 둘이 애를 낳고 키우는 것 자체가 참 두려운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도움받을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에, 엄마가 웃으며 내가 애를 낳으면 다른 성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쩌다 나온 말이지만 전화를 끊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나.........그러다 생각한 건 아마 엄마가 더 서러웠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 엄마가 더 서러웠을지도 모른다. 내 딸의 자식이 남의 성을 따라간다는 게.'


또 한편으로는 엄마도 엄마의 가치관을 어쩌지 못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외할머니를 보면 삼촌과 엄마, 이모를 대할 때 성차별은 하지 않지만,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녀로서 많은 걸 희생하고 살았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 레퍼토리로 나올 정도로 엄마는 서러워했다. 


엄마의 경험이 축적되어 우리 딸은 그렇게 키우지 않으리라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는 예의 (그 예의에는 시댁에 대한 예의도 포함), 그리고 아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 딸에게 해주어야 할 것. 당연히 그 가치관에 따른 기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무도 어쩌지 못 하는 것......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외손주는 친손주와 다르다며, 아기를 당연히 낳아야지~ 엄마가 당연히 우리 딸 산후관리도 하고, 도와주러 가야지~' 하신다. 부모님의 도움을 당연시하며 바라는 건 아니지만, 혼자 남겨져 아기를 돌보는 건 외롭고도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부모님이 함께 계시면 당연히 힘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출가외인이 되어볼까?


엄마 말대로 자녀를 낳으면 자녀는 남편 성을 따르는 게 현실이고, 결혼하면 출가외인 이라는 소리를 친정에서 듣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말 출가외인이 되어볼까? 라는 삐뚤어진 생각도 잠시 하다가. 됬다.... 나는 그래도 우리 부모님을 사랑하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한다. 그 노무 가치관........어쩔 수 없다. 서러움을 털어낼 수 있는 '잘 큰' 나를 위로하고 셀프 대견해하며 내 가치관을 잘 유지하고 살 수 밖에. 


엄마, 아빠. 
나는 어머니, 아버지랑 엄마, 아빠 모두 똑같이
(해 드릴 수 있는 선에서) 잘 해드리려고 노력할테니
건강하게 오래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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