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대와 30대인 우리의 합산 연봉이 1억이 되기까지
남편과 나는 미국에 오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미국인턴으로 미국에 왔고, 한국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미국에서 일할 회사를 미리 구하고 들어왔다. 2016년 초, 당시 미국 인턴의 시급은 대부분 $9-$11 정도였다. 시급 $9이면 연봉이 $18,720. 시급 $11이면 연봉 $22,880 이다. 세금 다 빠지고 하면 글쎄... 2주에 약 $600~800 받을 수 있으려나? 미국 인턴은 대부분 엘에이나 뉴욕 등 대도시로 가는데 스튜디오 월 렌트비가 $1500은 넘으며, 룸메이트로 들어간다해도 한달 $600짜리는 정말 구하기 어렵다. (거의 없다고 본다.) 생활비를 줄이더라도 집은 구해서 살아야 하니까. 미국 인턴의 평균 시급으로 미국에서 사는 게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에이전시에서 주는 일자리가 아니라 따로 일자리를 알아봤다. 2009년에 미국 뉴욕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나는 미국 대도시에서 숨만 쉬며 사는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월급을 받아봤고, 이제 막 MBA에, 내 사업까지 접은 마당인데 숨쉬기 힘든 정도의 시급을 받고 일할 수는 없었다. 될 때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헤이코리안, 라디오코리아, 잡코리아 USA 등의 구직광고에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지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가 1년 또는 1년반만 일하고 보내기에는 직원에게 많은 투자를 할 수 없었기에 좀 더 저렴한 인력으로 단순 업무를 충당하기위해 인턴을 채용하는 곳이 많았다. 그러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으로 사업을 하려는 회사에 연락이 닿았고, 약 6만불의 연봉을 협상할 수 있었다. 추후에 영주권도 스폰이 가능한 규모라서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그냥 친한 남자 사람이었던 우리 남편은 에이전시에서 매칭해주는 일자리 중에 뉴저지와 엘에이의 회사에 합격을 했고, 뉴저지 회사로 가게 되었다. 당시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제 막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남편은 뻔한 시급을 받고 뉴저지를 갔다. 미국에서 우리는 사귀게 되었고 그제야 난 속마음을 드러냈다. 한국은 '공채'라는 제도가 있다. 이 공채 시즌이 지나면 신입이 기업에 지원하는 길은 아예 막혀버리고 만다. 나는 그에게 지금 그 회사에서 배우는 게 많은지를 물었고,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디서든 배울 건 있다는 긍정적인 사람이었지만 회사의 정규직인 사람들을 보며 회사의 발전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언능 한국에 가서 공채에 지원하거나 아니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다. 그 즈음, 나도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린 둘다 그렇게 미국인턴 비자를 가지고 이직을 감행했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이직할 회사를 찾았고, 비자를 옮길 방법을 강구했다. 쉽지 않았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인턴 비자를 받아온 사람이 이직을 감행하다가 비자 문제가 생겨 한국으로 돌아갔다. 하루 하루 마음을 졸였고, 지금 다니는 회사로부터 스트레스도 받았다. 그러다보니 나는 더욱더 워킹 비자나 영주권을 스폰해주는 회사로 이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직을 하자마자 워킹 비자 또는 영주권 프로세스를 밟게 해주는 회사만 알아봤다. 솔직히 그런 회사를 못 찾으면 한국으로 가든, 캐나다를 가든, 싱가포르를 가든. 미국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둘다 영주권을 스폰해준다는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우리 둘의 연봉은 1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