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golife Dec 27. 2018

미국이민? 집 떠나 개고생  

나 한국에서는 이러고 안 살텐데.

아무런 환상 없이 '글로벌 환경에서 글로벌 업무를 경험해보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미국에 왔다. 영어도 잘해야 하고, 인종차별도 있을 거고... 회사 생활이 쉽진 않을 거야. 그래도 해보자.라고 이제 막 30살이 된 나는 내 몸 하나 내가 건사할 수 있겠지.라며 자신만만했다. 한 2-3년 미국에서 일하고, 아시아를 담당하는 글로벌 기업이 많은 싱가폴에서 몇 년 일해보고 한국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른 중반에 멋진 여자가 되어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 


이렇듯 처음부터 미국 이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일하고 싶었던 (정확히 어떤 회사라는 것은 없었으나 미국인들과 함께 일하며,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들은 인턴 비자를 갖고 있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기에 영주권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맘고생 몸고생은 하였으나 어찌 됐든 3년 안에 영주권을 받았으니 우리 부부는 운도 따랐고 감사한 마음도 크다. 그러나 영주권을 받고 보니 그 생각이 든다. 


아오, 나 고생해서 영주권 받았으니 진짜 미국에 뼈를 묻어야 하는 건가?! 


내 돈, 내가 벌고 세금도 내겠다고! 그것도 안 돼? 


미국에서의 꽉 채운 3년을 돌이켜보면 진짜 한국에서는 절대 겪지 않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라고 백번 천 번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고 살 수도 없고, 내가 일해서 돈벌고 세금 내겠다는 데도 이 나라는 그 기회조차 주질 않는다. 바로 '신분'문제이다. 이래서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나보다. 내 집이 아니니, 나를 쉽게 받아주질 않는다. 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비자라는 것이 나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좀 줘....라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칫하면 비자 때문에 노예생활도 해야 하는 게 그게 바로 비자다. 내 돈 내가 벌고 세금까지 내겠다는데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조차 없다. 신분 즉 비자를 받지 못하면 말이다. 


워킹 비자는 비자를 스폰해준 그 회사에서만 일을 해야 하며 이직이 자유롭지 않다. 이직은 가능하나 이직한 회사에 또 묶여있어야 하며, 이놈의 비자는 3년으로 한정되어있어 연장하려면 또 산을 넘어야 한다. 한 회사에서 3년 있는 것... 어렵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비자가 묶여 3년 일해야 하는 것과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게다가 3년 뒤에는? 모두 회사의 손에 달려있다. 


영주권 역시 회사 스폰을 받아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스폰을 받았으니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해야 하는데 영주권을 주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혜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불리할 때도 많고 맘껏 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회사는 안다. 이민자에게 영주권이 어떤 의미인지를. 


영주권을 스폰해주는 회사를 찾으며 이직하고 (인턴이나 워킹 비자를 갖고 있더라도 이직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영주권을 받아 일하는 그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백번이고 천 번이고 생각했다. 


아... 진짜... 한국이었다면 이런 회사는 진짜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크레딧이 뭔데.... 돈이 있어도 집을 렌트할 수 없단 말이냐. 


우리가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살 집을 알아보면서 큰 난관에 부딪혔다. 그것은 바로 크레딧. 즉 신용이다. 이제 막 소셜 넘버를 받은 우리는 크레딧 점수가 낮진 않지만 히스토리가 매우 짧았고 게다가 세금 보고 히스토리도 매우 짧았다. 게다가 겨울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세금 보고 액수도 매우 낮았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렌트비의 40배 또는 60배의 연봉을 받고 있다는 증거와 크레딧 리포트가 필요하다. 어떤 곳은 그전에 살았던 렌트 집주인 (랜드로드)의 추천서를 받아오라는 곳도 있다. 


뉴욕은 스튜디오 (원룸)만 해도 $2,000은 기본이다. $2000의 40배는 $80,000. 인턴 비자로 $80,000 받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글로벌 금융 회사에서 영주권 스폰을 받아 일하고 있는 사람이 $80,000 조금 안 되게 받던데... 우리는 둘이기에 둘의 연봉을 합쳐 이것은 해결할 수 있었지만 우리가 절대 깰 수 없는 관문이 있다. 


그것은 세금보고. 작년 겨울에 미국 와서 겨우 한, 두 달 번 돈을 세금 보고한 우리한테 세금 보고 금액이 적냐고 하면 어쩌냔 말이다... 세금 보고 금액도 적고 세금 보고 히스토리도 짧은 우리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들과의 경쟁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방법이 없었다. 


결국 우리 명의로 집을 구하긴 힘들었다. 그리고 이 집을 구하는 기간 동안 우리는 잠시 룸메이트 생활을 했다. 


신혼부부가 룸메이트 생활이 웬 말이냐. 한국에서는 절대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조건이 불리한 우리가 렌트할 수 있는 집을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겨우 마음에 드는 집을 찾더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하는 순발력도 중요하다. 미국 온 지 3년차가 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집은 방 하나에, 거실, 부엌이 따로 있는. 우리 둘이 살기에는 좀 크고 햇빛도 너무나 잘 들어오는 집이다. 이 집은 남편 혼자 보러 가서 사진과 영상만 그 자리에서 나한테 보냈었다. 남편은 이 집을 본 뒤, 바로 다음 볼 집이 있어 보러 가던 중이었는데. 사진과 영상을 본 나는 남편한테 다시 이 집으로 뛰어가라고 했고 나는 은행 이체로 바로 브로커한테 계약금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다음 집을 보러 간 사이에 이 집을 본 사람이 당장 계약금 걸겠다고 했단다. 그러던 중 남편이 전화를 했고 내가 계약금을 보낸 것이다. 두 눈으로 집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계약을 했어야 했지만, 지금의 집은 정말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 부동산을 보러 다니며 예산에 맞는,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여기와 마찬가지지만. 돈을 떠나 크레딧과 세금 보고 내역까지 모두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나같이 막 미국에 온 사람에게는 정말 상상도 못 하는 산이었다. 



미국에서 더 쉽게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개고생을 택했다. 


우리 둘은 미국에서 굉장히 어렵게 살고 있는 편이다. 그건 우리가 선택한 개고생이다. 미국 특히 뉴욕은 한인 커뮤니티가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다. 어느 한 지역을 가면 영어를 한마디 하지 않고도 장을 보고 생활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은행에 가도 한국인이 있고, 마트에서도 한국 음식을 살 수 있고, 한국말로 결제할 수 있다. 카페를 가도 한국말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회사는 영어를 전혀 쓰지 않고 한국말로도 업무를 본다. 


첫 인턴 비자로 일을 할 때는 대부분 한인 회사로 간다. 한국말로 업무를 하고, 간혹 전화로 영어를 쓸 때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문화는 물론이거니와 사무실에서 고성방가와 욕설이 난무하는 곳도 많다. 물론 미국인을 적절히 고용하고 회사 문화를 좋게 만들어나가려는 한인 회사도 많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일을 하다가 온 나에게는 모두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이직을 해가며 이 사회에 대해서 배우던 나는 생각했다. 결국 내가 문제라는 걸. 한국어로 할 수 있을 정도의 업무를 영어로 해야 한다. 동료들과 어느 정도는 친해질 수 있을 정도의 영어를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모두가 알고 있는, 은연중에, 살아가면서 알아야 하는 모든 것들을 나는 어떻게든 공부하여야 하는 것이다. 조금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만큼은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는 이 한인 사회 안에 있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치닫는다. 

미국에서 한인 사회에 있는 것은 그저 내 몸이, 내 거주지가 미국에 있는 것뿐이다. 

게다가 나의 삶의 질은 한국에서보다 좋지 않다. (내가 한국에서 일하던 환경, 만나던 사람들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가까스로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을 넘어 보자. 미국에 왔으니 조금이라도 우리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맛보자. 


아무런 환상 없이 '글로벌 환경에서 글로벌 업무를 경험해보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미국에 왔다. 영어도 잘해야 하고, 인종차별도 있을 거고... 회사 생활이 쉽진 않을 거야. 그래도 해보자.라고 이제 막 30살이 된 나는 내 몸 하나 내가 건사할 수 있겠지.라며 자신만만했다. 한 2-3년 미국에서 일하고, 아시아를 담당하는 글로벌 기업이 많은 싱가폴에서 몇 년 일해보고 한국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른 중반에 멋진 여자가 되어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 


나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 아이. 아니 이제 막 인간의 모습으로 형성되지도 않은 태아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10개월 후에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태아처럼. 나는 10개월, 1년 정도 매일매일 손가락을 만들고 발가락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해보자. 개고생. 이제 시작이다. 


*한인사회에서 일을 하고 생활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미국에 있으면서 여행도 다니고, 한국말로 일도 하고 한국 음식도 손쉽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커뮤니티가 워낙 작기에 인맥도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 단지 우리의 목표가 그게 아닐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9 가계부의 포멧을 바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