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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후기

by Y One

소련은 스탈린이라는 족쇄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끝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은 왜 패전했을까? 이 책은 그 답을, 히틀러와 나치 체제의 모순에서 찾아낸다.


1차대전 패전 뒤 세워진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일인들에게 굴욕 그 자체였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패전국의 낙인은 국민을 좌절로 몰아넣었다. 그들의 도피처가 된 것은 모르핀과 헤로인 같은 마약이었다. 광고가 허용될 정도로 대중적이었고,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나치와 히틀러는 금욕주의를 내세웠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던 히틀러는 권력을 잡자마자 마약성 물질들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독일은 다시 마약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금욕주의자 히틀러 자신도 점차 마약의 포로가 되어 갔다.


나치 독일이 처음부터 마약에 기대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일 제약회사의 탐욕과 전력 열세를 극복하려는 군의 절박함이 맞물리면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특히 독일군의 유일한 강점은 병력 규모였지만, 병사들은 잠을 자야 하는 인간이었다. 그 한계를 깨뜨린 것이 바로 메스암페타민 성분의 ‘페르비틴’이었다. 이 약을 투여하면 48~60시간 동안 깨어 있으면서도 활동량이 오히려 늘었다. 마지노선 같은 방어선을 독일군이 전격적으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약 덕이었다.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중독성과 부작용은 병사들을 빠르게 소모시켰고, 체력과 정신력은 곤두박질쳤다.


히틀러의 몰락에는 주치의 모렐이 깊숙이 얽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비타민 주사였지만, 히틀러의 지병과 군에 대한 통제 욕망이 모렐에게 더 강한 약물을 요구하게 했다. 모렐은 신임과 이익을 위해 각종 약물을 주입했고, 결국 오피오이드 계열의 마약까지 손을 댔다. 히틀러는 점점 약에 의존하게 되었고, 말년에는 침을 흘리고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무너졌다. 그런 상태에서 무리한 작전을 강요했고, 독일군은 되돌릴 수 없는 패배로 몰려갔다.


전쟁이 끝난 후 모렐은 끝까지 자신을 변명했다. 처방전은 암호로 작성되어 있어 법적 책임을 묻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히틀러 못지않게 초라했다. 책은 세계를 떨게 했던 나치 독일이 결국 마약과 함께 침몰했다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하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에 따르면, 수백 년 전 귀족들이 서민보다 일찍 죽은 이유는 오히려 의사들 때문이었다. 당시 의사들은 돌팔이에 가까워 잘못된 처방을 남발했고, 돈 있는 귀족들이 그 피해를 먼저 본 것이다. 200~300년 전의 풍경이 히틀러에게도 되풀이된 셈이다.

이런 의사들의 횡포를 제동 건 것이 바로 FDA였다. 처음에는 약 성분만 확인했지만, 어린이들에게서 큰 약물 피해 사건 이후 부작용까지 관리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의 안전한 약 공급 체계가 만들어졌다. 사실 우리가 병에 따라 적합한 약을 안심하고 쓸 수 있게 된 건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이다.

또한 이 책은 국가가 마약을 직접 공급할 때의 위험을 생생히 보여준다. 국가와 제약회사가 합작하면 순도 높은 마약이 대량 생산되고, 수십만 명이 단숨에 중독자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지금도 정부의 마약 통제가 왜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작가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곳곳에 유머를 섞어 읽는 재미를 살린다. 그러나 끝은 섬뜩하다. 히틀러의 몰골이 담긴 마지막 사진은, 마약이 어떻게 한 독재자와 제국을 함께 무너뜨렸는지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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