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 후기

by 리처드 리브스

by Y One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를 읽었을 때 저자가 SNS의 폐해를 십대 여자와 남자로 나누어 설명한 대목이 오래 남았다. 책에서는 SNS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더 큰 십대 여자를 더 집중적으로 분석했으며, 10대 소년의 경우에도 SNS와 비디오 게임의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전자매체 외에 다른 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좀 더 누적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간단히 짚고 넘어간다. 나는 그 설명에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은 채, 풀리지 않은 의문을 안고 책을 덮어야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까. 『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를 만났고, 그때 가졌던 의문들이 이 책에서 풀렸다. 놀랄 것도 없이 『불안세대』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 역시 이 책을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먼저 디펜스를 하자면, 이 책은 안티페미니즘 책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남자들을 보호하려는 목소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겨났다. 스러져가는 남자들을 위한 문제 제기는 곧바로 여성 인권을 억누르려는 적대 세력으로 오해받고, 논의의 첫발조차 떼지 못한 채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그런 우려 섞인 시선과 충고를 받았다고 밝힌다.
하지만 뒤에서 다시 밝히겠지만, 이 책은 바로 그 줄타기를 멋지게 수행한다. 뒤처지는 남자들을 위한 제언은 페미니즘이 경계해온 문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와 여자 모두가 더 잘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에게 나타나는 문제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해결책과 접근해야 할 공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여름휴가 도서로 추천되었다고 하니, 조금은 더 신뢰가 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책으로 들어가면, 저자는 오늘날 미국 남성들(특히 흑인 남성들)이 자살, 범죄, 실직, 무직, 중독 등 여러 지표에서 미국 여성들에 비해 뒤처지고 낙오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백인 여성의 경우, 과거에는 흑인 남성보다 경제적, 직업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현재는 여러 지표에서 오히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랜 노력과 투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성들의 복리가 우상향하는 동안, 막 사회에 발을 디딘 남성들이 앞으로 누릴 복리가 함께 상승하기는커녕, 데이터상으로는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핵심에는 학업 수행 문제가 있다.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는 학업 성취와 고등교육 접근이 필수적인데, 많은 남성들이 이전보다 더 크게 뒤처지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이미 여성들이 남성을 앞선 지 오래고, STEM 분야에서도 남녀 비율은 50:50에 가깝거나 그보다 남성이 약간 낮은 수준에 머문다. 성적 분포를 보더라도 여성들은 비교적 고르게 준수한 성과를 보이는 반면, 남성들은 극단적으로 높거나 낮은 분포를 보이는데, 최근에는 특히 극단적으로 낮은 쪽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까. 리브스는 그 원인을 소년 시절부터 겪는 가난, 학습 환경, 그리고 남성의 학습 능력에서 찾는다. 먼저 학습 능력을 보자면 저자는 생물학적으로 소년의 뇌는 같은 나이대의 여자보다 늦게 성장한다는 사실들을 보여준다. 십대 소녀가 소년보다 신체적, 심리적 성숙을 먼저 겪는다고 말하는데, 이는 학습 능력의 발달에서도 유사한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발달 속도가 다른 두 성별이 동일한 경제적 지원과 부모의 기대 아래 같은 교육 시스템에 놓일 경우, 학업 성취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학업 능력 외에도 어린 시절 겪는 경제적 불안과 성장 과정에서의 남성 롤모델 부족을 꼽는다. 소득 분배 하위 20%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빈곤에서 벗어날 확률이 여자아이들보다 낮고, 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은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131쪽).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소년은 평생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소녀보다 훨씬 높고, 이혼으로 인해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될 경우 그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131쪽). 다만 이 지점에서는 경제적 문제를 성별로 어떻게 다르게 개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자원을 성별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문제일까 하는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대안 제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진보 진영에서는 남녀 간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요인을 지나칠 정도로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불평등은 오로지 문화와 사회구조의 산물이라는 관점에 머물며, 남성성 자체를 유해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 결과 남자들이 겪는 고통은 여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고 간주된다. 보수 진영 역시 큰 희망을 주지는 못한다. 보수는 진보보다 남성의 고통을 더 인식하는 듯 보이지만, 그 해결책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는 과거로의 회귀에 가깝다. 제조업이 번성해 남성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식이다. 이렇게 정치권이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동안, 소년과 남자들의 고통은 누적되었고, 그중 일부는 트럼프 지지와 같은 정치적 선택으로 기울거나, 앞서 열거한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흥미롭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태생적인 학습 발달 차이에 대해서 저자는 1~2년 늦은 취학을 장려하자고 제안한다. 1년 유급하거나 낙오될 바에는 차라리 한두 살 늦게 입학시키자는 것이다.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하지만, 과연 이를 선뜻 받아들일 아들 둔 부모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대안은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한 HEAL 분야 [Healthcare(건강), Education(교육), Administration(행정), Literacy(문해력)]로의 진출을 적극 장려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돌봄 분야는 여성만의 영역처럼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남성의 관점과 물리적 역할이 필요한 순간도 많다. 남자 간호사가 환영받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특히 교육 분야는 소년과 성인 남자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 수많은 보조금과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소년들의 학습 성과가 개선되지 않았던 반면, 유의미한 변수를 꼽자면 남성 교사의 존재였다. 소녀들의 경우 교사의 성별과 무관하게 성과 차이가 거의 없었지만, 소년들은 롤모델이 될 남성 교사가 있을 때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제조업 쇠퇴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미국 남성들에게 교육을 포함한 HEAL 분야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분야들은 STEM 분야에 비해 소득이 낮아 매력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남성성의 핵심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추상적 자기 규정보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직업의 유무에서 찾는다. 남자들에게는 직업 자체가 존재론적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역시 어떻게 그 지점에 도달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는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이 훌륭한 줄타기를 해냈다고 느낀 이유는, 소년과 남자들의 문제와 소녀와 여자들의 문제가 서로 다른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성이 직업과 소득에서 장벽을 겪고 있다면, 남성은 학습에서 장벽을 겪고 있다. 각 성별이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정확히 알게 된다면, 투입되는 지원과 자원 역시 더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성별 간에 충돌할 이유가 줄어드는 것이다.

늦게나마 소년과 남자들이 겪는 문제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책으로서, 이 책은 분명 시작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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