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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by Y One

이 책 낭만이 넘친다. 처음에는 자기계발서인 줄 알고 집어 들었지만, 사실 사부의 사랑을 가득 받은 제자가 무림을 활개 치며 정상까지 찍고, 다시 그 제자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재밌는 무협지 같은 느낌도 든다. 심지어 제목도 고수 아닌가.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이 책은 그 둘을 잘 충족시키면서도 잔잔한 재미도 있다. 한 투자자가 5~6년 전에 추천한 적이 있어 기억만 하고, 읽진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영화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대출을 결심했다. 국내도 아니고 세계 최정상을 오랫동안 했다면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여기 인상 깊은 구절들을 정리한다.


35p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바둑이다.

37p 사람들은 행복이 돈이나 명예, 성공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진짜 행복은 단단한 자아에서 온다고 믿는다.

66p 감정은 그저 흘러왔다 흘러가는 덧없는 것으로, 어떤 감정도 스스로를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삶의 자세였다. 기쁨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고, 슬픔과 분노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봐야 한다.

->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생각과 같아서 놀랐다. 어느새부턴가 기뻐도 기뻐하지 않고, 슬퍼도 슬퍼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변화에 내가 버틸 수가 없어서 스스로 무뎌져야겠다고 초년 시절에 다짐했었다. 근데 예전에 만난 분에게 내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니 그분은 기쁠 때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사람 사는 거냐고 반문했다. 그 역시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171p 눈을 부릅뜨고 실패를 봐라.

174p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괴롭기만 한 복기, 그럼에도 우리는 복기를 해야한다.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치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승부사들은 오히려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 동의한다. 살아갈수록 먼저 하나 더 배우고, 보는 것보단 이미 배우고 해 본 것들을 회고하고 반성할 때 더욱 성장하는 걸 느낀다. 새로 해보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지만, 복기를 했을 때는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느낌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한 권이라도 더 읽으면 똑똑해지는 느낌이 들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읽은 양서는 또 읽었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느낌과 성장이 동반되더라.


178p 적을 적으로만 본다면 결코 배울 수 없다. 적이라도 존경심을 가지고 좋은 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심으로 이기고 싶다면 이기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 하나라도 더 질문해서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훈현은 고수가 맞다. 곳곳의 전쟁터를 겪으며 정점에 올랐던 사람의 이야기라 더 와닿았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이 책은 손자병법 같은 전략서라기 보단 논어에 가깝다고 느꼈다. 일본에서 문하생 시절 이야기에는 뭉클한 장면도 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고에 선생님의 묵묵한 사랑과 가르침이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펐다. 아끼는 제자가 군대 문제로 떠나고 그 슬픔을 차마 이기지 못하셨을 때, 논어에서 공자 선생님의 제자 사랑도 함께 보는 느낌이다.



세계 정상급이 지나왔던 낭만과 처세술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괜찮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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