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고 있던 독서모임의 모임장인 신정철님의 책이다. 가입하지는 좀 됐는데 아직도 모임장의 책을 안 읽는다는 게 찜찜해서 드디어 들었다. 결과적으로 책 좋아하는 이라면 공감 갈 부분이 많아서 그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며 페이지를 넘겼다. 이미 내가 하고 있던 것도 있고, 새로 배운 내용들도 있어 여기 남긴다.
49p 밑줄 치기는 나 자신의 정체성과 성장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54p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 아툴 가왼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용기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82p 문장을 옮겨 적을 때는 그 문장이 있는 페이지 번호도 꼭 적어야 합니다.
-> 이 책을 읽고나서 페이지 수를 적기 시작했다.
87p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원래 문장의 의미와 다른 내용을 독서 노트에 적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메모할 때는 그대로 옮겨 적는 게 맞다.)
88p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이처럼 '출전(문헌 제목과 쪽수, 나아가 출판 연도 등)'을 명기한 독서 노트를 계속 쓰는 것이다.
-> 쪽수, 연도까지는 왜 필요한지 궁금하다. 논문 reference라면 몰라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설명이 안되어 있다.
109p 언어 그 자체는 현실적으로 무엇을 하는지와 상관없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언어의 해방적인 힘(언어의 타자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공부의 철학'의 주장입니다.
158p 블로그에 올린 글의 조회 수가 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 어렵습니다.
234p 저와 같은 사람을 위해 '지적 생활의 발견'의 저자 와타나베 쇼이치가 멋있는 말을 남겼네요. "지적 생활이란 꾸준히 책을 사들이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 큰 위안이 되는 말이다. 사놓고 안 읽은 괜찮은 양서들이 집에 쌓여 있는데 죄책감을 덜어놓을 수 있게 됐다. 월 10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이 정도 지적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사치라고 할 수 있을까?
235p 메모 독서를 하면 할수록 내가 가진 지식의 범위가 얼마나 협소했는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얼마나 드넓은지 깨달아요. 독서는 무지의 확장입니다.
-> 나도 똑같이 느낀다. 독서량이 쌓이다 보면 어느 새인가 머릿속에 지도가 만들어진다. 근데 이 지도 곳곳에는 구멍이 보여서 책을 즐기는 사람으로서는 이 부분을 메꿀 새로운 책을 갈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구멍들은 공간 상에 보이기도 하고, (유럽사와 아시아사를 읽다 보면 그 사이의 스텝 지역, 중동, 러시아 역사가 비어있다.) 시간 상으로도 존재하고, (현대사와 근대 사이의 벨 에포크 시대나 미국, 독일의 태동기 등) 영역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때 유전과 양육뿐만 아니라 문화의 힘, 영장류에서 이어져 오는 습성 등) 결과적으로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느끼는데, 역설적으로 이 무지의 깨달음이 독서의 즐거움이다. 읽을 게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독서가들은 수 천년 전부터 넷플릭스를 경험해 오고 있었다.
저자는 이 밖에도 마인드맵 그리기를 추천했는데, 이건 하면 좋겠지만 그 효용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메모&정리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지나친 양에 의지를 꺾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 경우에는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 나올 때는 테이블로 정리를 해보지만, 책 전체를 마인드맵으로 파악할 필요는 많이 느끼진 않는다. 대개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이나 지식, 몰랐던 사실 하나라도 건진다면 그 책의 값은 충분했다고 느낀다.
메모 도구에 대한 욕구도 강해진다고 하는데 이것도 내 경우는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필기도구는 모나미 볼펜 한 자루면 충분하고, 요즘에는 인덱스 탭 정도 새로 추가해서 표시하고 있다. 이건 독서가들끼리 다르다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