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희수 Aug 01. 2021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건물 같은 것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은영은 자기 몸이 꼭 계획 없이 막 지어진 가건물이나 창고 같았다.

제 소유가 아닌 것들이 가끔 가득 들어찰 때도 있었으나
이내 빠져나가고 비바람에 시달리며

녹슬어 간신히, 안간히, 겨우겨우 서 있는
그런 슬레이트 건물 말이다.

보건교사 안은영_정세랑

아홉수라는 말이 있다. 나이 끝에 아홉이 붙으면 재수가 없다는 뜻이다. 평소 같으면 미신이라고 웃어 넘겼을 거다. 그런데 난 아홉수를 겪고 있다.

 

얼마 전 선배 언니와 친구 몇몇을 만난 자리였다. 20대 초반을 함께했던 그녀들의 근황은 내가 알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소량의 음주에도 길게 이어지는 후유증, 퇴근하고 아무것도 못하겠는 체력방전, 계단 몇 칸 조차 힘겨운 사투가 된 이야기 등. 그렇게 이어지는 내 체력이 더 구리다는 대결 중 선배 언니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게 아홉수야.’


아홉수는 별게 아니라고 했다.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에서 체력의 최저점을 만나는 것이고 내가 노화과정 중이라는 걸 생생하게 깨닫는 시기라고 한다.


내 육체는 방전을 맞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정서는 19살에 머물고 있다. ‘인생은 왜살아야 하나’. 방황의 끝 사춘기에나 했던 질문을 다시 하고 있다. 일은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는 더더 모르겠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니 결혼, 육아라는 큰 산도 남아있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면 다다라 있는 것이줄 알았는데, 이 질문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자주 듣는 팟캐스트가 있다.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코너가 있다. 이 시대의 영웅들은 창업에 성공했고, 자신만의커리어를 탄탄이 쌓아올린다. 거기다 더 멋진 건 누가 들어도 남다른 취향과 취미까지 갖췄다. 인터뷰를 들으며 그 많은 의지와 열정은 누가 가져다 주는걸까 부러워하고는 했다.


 그날의 인사는 보기드문 투자구조로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였다. 인터뷰에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물었고, ‘근육’이라는 꽤나 원초적인 대답이 나왔다. 체력이 있을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의지가 나오고, 내 주변 사람에게 더 관대해진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들으며 피곤하다며 가족들에게 잔악하게 굴었던 내 모습, 체력없고 힘들다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내 아홉수의 미스터리는 이렇게 어이없게 풀렸다.


내 세상은 확장을 앞두고 있다. 가족 뒤로, 다니고 있는 회사와 직함 뒤로 숨을 수 있는 세상의 끝. 능동적인 한 명의 개인의 삶을 앞둔 시점에, 엄청난 고뇌가 뒤따라 올줄 알았다. 그러나 운동을 더 하자는 결심으로 다시 마음을 정비 해본다. 사람은 이성을 지니고 인생의 철학을 논하는 존재라지만, 육체에 휘둘리는 생각보단 더 동물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