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박완서 <사랑이 무게로 안 느껴지게>

by 고희수
나는 내 마지막 몇 달을 철없고 앳된 시절의 감동과 사랑으로 장식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 이해관계없는 순수한 찬탄을 보내고 싶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 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 두고 싶다.



나는 글을 쓸 때 “나는”으로 시작하는 걸 지양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디선가 ‘그게 원칙이다’하고 배웠을 것이고, 나 스스로는 “나”부터 시작하는 글은 나 말고는 관심이 없을 거란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


밀리에서 오디오북을 들어보려고 고르다가. 염혜란 배우가 읽어주는 박완서 선생님의 에세이 오디오북이 있어 틀어봤다. 박완서 선생님의 따듯한 엄마 같은 문체와 배우님의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선생님은 글에서 형용사나 명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배우님이 그걸 잘 살려 읽어주며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오디오북을 거의 다 들었을 때쯤 대부분의 글이 시작할 때 “나는”으로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으로 문장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더 잘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글쓰기 법칙이 있을 만큼 글 쓰는 것에 엄격하려고 노력한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기도 하고, 글 쓰는 걸 직업으로 했다는 자부심 때문에도 있다. 20대에는 더 심했다. 그래서 일 말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 말고는 잘 못썼다. 내가 내 생각을 쓰는 것도 검열을 하고 힘을 빡 주고 쓰니 재미가 없었다.


30대가 된 지금은 좀 편해졌다. 예전에는 빡빡하게 썼다면 요즘은 설설 쓰고 있다. 재밌는 글감이 떠올라 쓰다가 결론을 못 내기도 하고, 처음에는 사과 이야기를 하다가 로또 일등이 되면 농협 본점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내기도 한다. 글쓰기가 꼭 나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 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어디에 서있고,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지 찬찬히 새기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는 것도 있다.


글쓰기 언저리에 있는 내가 쓴 글도 이런데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어떤가. 에세이를 읽어 보면 대부분 문장이 짧고 단어가 쉽다. 어린이처럼 감정은 진솔하고, 상황은 일상적이다. 하지만 그런 단어와 감정과 상황이 쌓여 깊은 여운을 만들고 있다. 힘을 빼고 아이가 일기 쓰듯 써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처럼 명문이 나온다. 대가의 글쓰기란 이런 건가보다.


손발의 처리는 아무렇게나 하고 엉덩이와 아랫배만을 파도치는 것처럼 격렬하게 흔드는 고고가 있는가 하면 손끝 발끝 머리끝의 신경이 살아서 섬세한 경련을 일으키는 것같이 추는 고고도 있고, 무르팍만을 사시나무 떨듯 추는 고고도 있다. 얼굴이 각양각색인 것만큼 추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나는 살림을 잘하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잘하는 여자는 안 좋아한다. 이를테면 깨끗한 걸 너무 좋아해 쓸고 닦고 털고 닦고 온종일 그 짓만 하고, 밤엔 몸살을 앓는 여자를 보면 딱하다 못해 싫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도 더 슬슬 써야지 한다. 글쓰기에 욕망이 담길수록, 힘을 빡 주게 되고, 그럴수록 나와 글이랑 멀어지는 기분이다. 잘 쓰기 위해 내가 아닌 무언가를 위장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더 많이 써봐야 할 것 같다. 나의 생각, 감정, 경험이 살아있는 그런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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