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 대란과 욕망하는 마음

조지 버나드 쇼〈Man and Superman〉(1903)

by 고희수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는데,
하나는 절실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다.
There are two tragedies in life.
One is to lose your heart’s desire. The other is to gain it.

조지 버나드 쇼〈Man and Superman〉(1903)


두쫀쿠가 대난리다. 쿠키에 들어가는 초코파우더, 마시멜로우, 피스타치오 같은 재료는 물론 포장하는 케이스까지 다 가격이 올랐다. 실시간으로 품절이 되다 보니 재고 현황을 보여주는 지도까지 나타났다.

두쫀쿠 보물지도


어떤 아이템이 유행할 때 나는 먼저 경계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 아이템에 가치가 있다기보다 사람들의 열광이 앞설 때가 더 많으니까. 그 열광에 꼈다가 낭패를 볼 때가 훨씬 많으니까. 그래서 두쫀쿠도 경계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난리를 관망하고 있었다. (물론 내 의지와 무관하게 구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회사 앞 단골 디저트 가게에서 두쫀쿠를 팔기 시작했다. 이곳은 구움 과자만 만드는데, 사장님이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이다. 그래서 웬만한 건 다 맛있다. 나름 구움과자 철학이 있는지 3년 동안 메뉴를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 두쫀쿠 대란일 때도 고고하게 상관없는 스콘과 휘낭시에만 팔았다. 그런 곳에서 이제와 두쫀쿠를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두쫀쿠를 팔기 시작했다는 사장님의 말과, 두쫀쿠라고 적힌 작은 팻말 외에 아무도 실체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8시 출근을 하고 가봐도 없고, 오후에도 없다. 옆 자리 동료가 아침 7시 30분쯤 가봤는데 그때도 없다고 했다.


일찍 출근하는 날이면 가게 앞을 어슬렁 거리며 있나 없나 확인하고 갔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면 해결될 일이지만, 도대체 언제 와야 살 수 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유난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 어슬렁 거리는 나를 사장님이 알아챘는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과자를 굽기 위해 새벽 4시에 가게를 여는데, 그때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는 것이다. 두쫀쿠는 전날 만들어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이 가게의 두쫀쿠를 먹으려면 새벽 4시에서 7시 사이에 회사 앞 가게를 방문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겨우 과자 하나를 위해 이 난리에 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유니콘 같은 두쫀쿠의 실제를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사실 이미 이 난리에 껴있는 거지만 미친 두쫀쿠 경쟁에서 하나라도 얻으려면 더 유난스러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 나름 단골이라고 나를 가엽게 여긴 사장님이 몰래 남겨둔 재고 3개를 파셨다. 초코 가루를 뒤집어 쓴 두쫀쿠가 사각형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들어있었다. 작아 보이기도 하고 평범해 보이기도 했다.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뭐랄까? 마음이 팍 식었다. 어쩌면 나는 두쫀쿠를 먹고 싶다기보다 소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들이 쉽게 구하지 못하는, 특히 새벽 4시에 나와야 살 수 있는 이 가게의 두쫀쿠를 손에 넣고 싶다는 욕망, 뭐 그런 것.


일주일 동안 전전긍긍하며 가게 앞을 서성이게 했고, 동료들 사이에서 핫 토픽이기도 했던 내 욕망의 실체가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놓여있는 건 퍽 초라했다. 차라리 구하기 전이 더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는데, 하나는 절실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해도, 얻어내도. 그 사이에서 절망을 오가는 것이 인생이란 것이다. 그럼 두쫀쿠를 사고 나서 얻은 씁쓸한 감정은 욕망을 따라간 당연한 대가일까?

사람과 대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의 욕망은 저렴해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욕망의 대상이 생기면 쉽게 돈 주고 살 수 있게 된 시대다. 사기 전의 기대와 사고 난 후의 실망을 함께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하나를 사고 실망한다. 그리고 빠르게 다음 욕망의 실현해 줄 대상을 찾아 나선다. 트렌드가 계속 바뀌면서 이 주기는 더 빠르게 전환된다.


두쫀쿠처럼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일수록 갖기 전의 기대감은 더 커진다. 실제 물건보다 훨씬 부풀려진 기대감의 거품처럼 함께 딸려 오는 것이다. 잦게, 저렴하게 욕망할수록 뒤에 따라오는 허무함의 낙차는 더 커진다. 소비하고 나면 은근히 남는 씁쓸함은 내 욕망이 쉽게 채워졌고 또다시 쉽게 채워질 거란 허무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그만 두쫀쿠를 세 입에 나눠 먹고 난 뒤 텅 빈 네모난 플라스틱 케이스가 남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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