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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Sep 30. 2023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

백리향이 피는 호숫가.

앵초와 제비꽃, 달콤한 향기가 나는 덩굴들.

잔잔한 들장미 향.

잠이 솔솔 오는 곳.

꽃들이 춤추는 곳.

드넓은 호수를 가득 채운 것은 눈물이다.


마치 마법 같은 밤이다.

콩싹, 거미줄, 나방, 겨자씨는 살구와 산딸기, 포도와 무화과 열매, 벌이 만든 꿀을 가져다주고 마치 환상처럼 환한 촛불을 켠다.

설탕처럼 단 포도주의 맛은 내일이 되어 잠에서 깨어나면 모두 꿈처럼 느껴질 것이다.


밤의 여왕이여, 결코 너를 두려워한 적 없다.

바다 위에 누워 숨을 죽이고 나는 언젠가 찾아올 나의 파도를 기다렸노라.

그러나 운명의 요정은 나를 넘어뜨려 긴긴밤에 빠뜨렸고 한 줌의 시냇물에 나는 심연처럼 괴로워했다.

고백하건대, 밤의 여왕이여. 나는 지나가는 낙엽도 너인 줄 알고 숨을 죽였고 날아다니는 나방도 너인 줄 알고 도망쳤노라.

짓궂은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가슴을 치며 모두 내 탓이고, 내 탓이고, 내 탓이다.

밤의 여왕이여, 이슬에 젖고 들장미에 찔리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빛이 보인다면 너의 품에 안길 것이다.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너는 아름다웠노라.

그러니 어서 와라, 내일아.

내일이 오면 태양이 뜨겠지.

어젯밤의 일이 꿈처럼만 느껴지게.

새들은 어디로 갔는가.

나에게 대답해 다오.


여행을 떠날 것이다.

세계를 나침반 삼아

달빛처럼 움직일 것이다.


다시 요정의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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