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평범한 삶이 멈추다.
익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이었다.
원래는 지방종 제거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익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기차도 탈 겸 바람도 쐴 겸, 동기 얼굴도 한번 보고 오자는 마음이었다. 휴직을 하고 나니 시간의 흐름이 조금 느슨해진 느낌도 있었다. 병원은 하루 이틀 미뤄도 큰일은 아닐 것 같았다.
앞으로 내 상황이 얼마나 급하게 돌아가게 될지,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평일 낮이라 기차는 비교적 조용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을 벗어나자 풍경이 조금씩 바뀌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논과 밭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는 느낌이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이런 여유가 거의 없었다. 출근과 퇴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평일 낮, 기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익산에 도착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동기는 생각보다 담담해 보였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조문을 했다. 예전 같은 부서였던 사람들도 몇 명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다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특별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조문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몸이 조금 피곤했다. 며칠 동안 운동도 하고, 여행 준비도 하고, 병원도 다녀오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연락이 왔다.
예전에 같은 팀에서 일했던 후배였다.
“형… xx 어머니 돌아가셨어요.”
예전에 함께 일했던 후배의 어머니 부고 소식이었다. 인천이라고 했다. 나는 서울로 올라가던 중이었고, 용산역에서 내려 바로 인천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날은 하루에 장례식장을 두 번 가게 됐다. 익산에서 조문을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인천으로 가는 길.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무뎌진 듯했다.
인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회사 이야기도 잠깐 나오고 서로 안부도 물었다. 조용한 자리였지만 자연스럽게 작은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누군가 소주를 따랐다. 나도 잔을 하나 받았다.
한 잔, 두 잔.
“요즘 뭐 하고 지내?”
누군가 물었다.
나는 잠깐 웃으며 말했다.
“나 곧 몰타로 어학연수 가요.”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다들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이를 키우는 애아버지들은 잠깐 부러운 눈빛을 보였다. 쉽게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좋겠다.”
“부럽다.”
가볍게 웃으며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 나도 웃었다. 사실 아직 완전히 실감나지는 않았다. 정말 떠날 수 있을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 삶을 다시 시작해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날의 술자리는, 연달아 다녀온 장례식 끝에 우연히 만들어진 평범한 자리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는 자리. 그 정도로 지나갈 하루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하루였다.
하루 동안 장례식장을 두 번 다녀왔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몰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원래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은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생각보다 취기가 빨리 올라왔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그 인천 후배의 모친상 이야기는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듣게 된다. 그 후배는 이후 내게 큰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날은 익산과 인천을 오가며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오랜만에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한동안 사라졌던 내 근황을 알린 날 정도로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마신 소주가
내 인생의 마지막 소주가 될 줄은,
그때는 전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