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변화는 비폭력적이어야 한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는 요즘, 매일 같이 공짜로 강의 듣는 기분이다. 책 한 권의 값으로 이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니.
책을 읽음으로써 완독 했다고 할 수 없는, 읽고 생각하고, 나의 이야기를 더해본 다음에야 완독 했다고 할 정도의 책이다. 아니, 어쩌면 한 번 읽은 걸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두 번 세 번 읽으며 완전히 배우고 싶은 이어령 선생님의 시선과 생각의 결.
그의 말 중에 울림이 컸던 부분 중 이런 글이 있었다. (p.144)
“밤 사이 내린 눈은 왜 그렇게 경이로울까요.”
“변화잖아. 하룻밤 사이에 돌연 풍경이 바뀌어버린 거야. … 일상에서 유일하게 겪을 수 있는 게 간밤에 내린 눈이라네. ... 밤새 내린 첫눈이 쿠데타야. ... 오래 권력을 누리지 않고 바로 사라지는 쿠데타. 오래 있어봐. 눈 녹으면 지옥이지. 곧 사라지니까 그만큼 좋은 거야. 아름다운 쿠데타.”
(중략)
“어제 보던 지붕, 어제 보던 길거리, 어제 보던 논밭이 하얀 바다처럼 변했을 때 세상이 얼마나 찬란한가.”
자연의 변화는 아름답고 찬란하다. 티브이 화면조정 시간에 애국가가 나오면서 볼 수 있는 화면에는 우리나라의 4계절을 자랑하듯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이 나온다. 계절에 따라 눈에 보이는 풍광이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자연이 변화하는 속도와 시기를 예측하며, 우리의 어르신들은 농사를 지었고 수확을 하고 저장을 했다. 당연한 자연의 변화에 우리는 삶을 의존하고 있었다. 우리가 의존하는 만큼, 자연의 변화는 수용 가능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의 자연은, 우리에게 썩 다정하지 않다.
자연이 보여주는 변화의 모습이 어쩌면 조금 폭력적인 것 같다. 우리 삶에 생채기를 내듯, 자연의 변화로 인한 상처가 곳곳에 남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혹은 비가 오지 않음으로써, 비가 와야 할 시기에 오지 않음으로써, 비가 너무 오래 내림으로써 등등. 이제는 의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의 변화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을 앗아갈 만큼,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야 할 만큼, 폭력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자연 현상.
자연이 우리에게 화가 난 것 같다.
다정한 자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요즘.
우리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한 게 있나 보다.
제주도에는 자연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는 시스템 하나가 있다. 바로 오름 휴식년제. 관광객에게 압도적인 사랑을 받는 용눈이오름이 현재 2년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오름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소 불친절 하기에 (오름에 방목되어 있는 소, 말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오름에 오르고, 간혹 쓰레기도 남기고 오는), 2년간 참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금 잔뜩 화가 나 있는 우리 지구에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화해를 시도해야 할까?
친구 사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잘 발전시켜 나가는지 생각하듯,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도 다정하고 비폭력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진출처: Elisa Kerschbaum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