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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Jun 14. 2022

썩지 않는 것들의 미래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달여만에 해양 봉그깅 (‘줍다’ 제주 방언인 ‘봉그다 플로깅plogging의 합성어) 하게 되었다.


그간 참여했던 해양 쓰레기 줍기는 모두 해안가에서 진행되었고, 그래서 일회용 컵, 빨대, 혹은 맥주병 조각처럼 바닷가에서 놀다 간 사람들의 흔적이 쓰레기로 남았던 모습을 보았다.


일회용 컵이나 플라스틱 빨대는 지난 1~2년 사이 빠른 속도로 소위 ‘대중적인 쓰레기’가 되었고, 사회적인 담론도 나름 형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회용품으로 쓰레기를 만드는 기업과 환경적 의식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손가락질하기 쉬웠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항구에서 봉그깅을 했다. 바위틈 사이에서 위태하게 쓰레기를 줍기란 조금 무섭긴 했다.

게다가 바람도 많이 불어 초반에는 스스로도 조금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니, 쓰레기의 양, 그 하나에 압도되어 무섭다는 느낌을 기억할 수도 없이 줍고 또 주었다.


항구에서 내가 발견한 쓰레기는 주로 비닐봉지와 노끈들이었다. 특히 검은색, 투명색 비닐봉지는 바위틈에서 계속해서 나왔다. 무슨 화수분처럼. 항구니까 어업 쓰레기가 쌓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중 그 누구가 비닐봉지 사용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 시간 동안 주워도 여기 쌓여있던 비닐봉지를 다 없애지 못했다.



우리는 과연 쓰레기를 버리고 간 사람들에 대해서 화가 난다고, 속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줄이고 줄인다고 해도 우리도 결국엔 비닐봉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형태가 망가지지도 않고, 아스러지지도 않는 비닐봉지를 끝없이 주워 담으며, 썩지 않는 것들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소각장으로 가게 될 이 엄청난 비닐봉지들은, 연소되면서 또 어떤 나쁜 연기를 대기 중에 뿜어내게 될까. 사용 단계에서의 편리함만을 생각했던 우리는, 그 대가를 이렇게 치르게 되는 걸까.


편리함과 내구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세상에 등장한 많은 것들이 지금은 골칫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어쩌면 수명이 정해진 것들, 썩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의 소중함을 너무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 저녁, 김영하 작가의 신작 <작별인사>를 읽으며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썩지 않는 것, 즉 인간이 ‘영원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얼마나 신기루인지.


책에서 특히 울림이 있던 문장이 있다.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p.135)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느끼는 감정은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바로 이 <자연스럽다>는 표현에서 ‘자연’의 속성을 알게 된다. 우리가, 인간이 임의로 편의대로 바꾸고 만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지켜질 때 바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쉽게 구매하고 쉽게 싫증 나는, 쉽게 사용했다가 쉽게 버릴 수도 있는 것들의 가치가 무엇일까?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마냥 SF로 읽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점점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을 지양하게 된다.



사진출처: Muhammad Adbulla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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