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고 하더니 폭염이 쏟아진 하루. 하필이면 그런 날, 나는 걷기를 선택했다.
그래도 더위가 무섭긴 했으니, 더위를 피하면서도 걷기 위해서 일부러 숲이 있는 코스로 골랐다.
그리하여 걷게 된 올레길 3-A 코스 중, 통오름과 독자봉.
오름까지 가는 길에 잠깐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고 땅에서부터 올라온 더운 공기가 내 몸을 덥혔다.
그래도 오름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 안에서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아,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는 옛 노래가 절로 나왔다.
자연 바람이 제일 좋구나.
에어컨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에어컨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하게 해 준 에어컨을 예찬하면서도, 정작 그 바람을 맞으면서 우리는 냉방병을 조심하고, 전력난을 염려한다. 빌딩과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는 실제 온도보다 더 뜨거운 불지옥이겠지만, 결국 불지옥에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 에어컨이 아니었다.
역대 가장 빠른 열대야 시작, 벌써부터 시작된 폭염. 우리는 그저 ‘아 오늘 덥다’ 하고 익숙해지면 되는 건지, 그저 에어컨만 더 설치하면 되는 건지. 더위를 피하는 방법들이 결국엔 지구를 더 뜨거워지게 만들 텐데.
오후 3시 무렵, 더운 햇볕을 피하고자 그늘에 잠시 서 있었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한 모금 물을 마시고 다시 햇빛 속으로 발을 뻗어 걸어 나갔는데, 그제야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더라.
앞으로 나아갈 때, 그 길이 햇빛 아래일지라도 바람이 내게 불어오게 된다는 것.
내가 편하고자 그늘에 가만히 서 있는다고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
숲 길을 걸으면서 ‘아 너무 좋다’ 감탄하게 하지만, 숲 속 걷기는 사색의 경험도 하게 해 준다.
이런 사색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도시와 제주의 차이가 아닐까. 어딜 가도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서울. 그러나 6일간 일 하고 하루를 쉬었던 성경 이야기처럼, 우리에게도 쉬어가는 여백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늘, 숲, 나무, 꽃과 바다가 자연스러운 삶.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을 찾으려는 노력. 그러기 위해 자연 속의 경험이 주어지는 여백이 있는 라이프 스타일.
그런 삶이 요즘 말하는 ‘지속 가능한 삶’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