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9
오로라가 떴어요!
옐로나이프 공항으로 픽업을 나온 가이드님은 오늘은 구름이 껴서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 본 겨울왕국 실사판 눈의 나라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랬는데, 저녁 9시 즈음 가이드님은 바빠졌다. 가능성이 낮다고 했던 오로라가 떴으므로! 게다가 구름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에 빨리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숙소가 있는 다운타운에서 한 10분쯤 달려갔다. 마치 오로라 헌터들의 차만 다니는 것 같은 깜깜한 도로. 조명 하나 없었지만 달 빛 하나에도 오로라를 찾아가는 우리는 두렵지 않았다.
오로라를 볼 확률을 높이기 위해 보통 3일 정도 투어가 진행된다. 구름이 끼거나, 달이 너무 밝거나, 등 여러 이유로 오로라를 놓칠 수도 있고, 오로라가 떠 있어도 금세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로라 헌팅 첫날, 첫 장소에서 우리는 오로라를 만났다.
아지랑이 같이 꿈틀대던 푸른색의 바람결은 치마폭이 되어 하늘을 감싸며 우리 머리 위에서 들썩이며 춤을 추었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선 우리는 하늘이라는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오로라를 바라보는 관람객이 되었다. 오로라의 공연이 길어지자 폭신하게 쌓인 눈 위로 하나 둘 등을 대고 눕기 시작했다. IMAX 스크린보다 더 큰 자연의 무대를 내가 지금 맨 눈으로 보고 있다.
아.. 엄마가 오로라를 참 보고 싶어 했는데.. 엄마 내가 여기서 오로라를 보고 있어!
울컥하는 감정이 밑에서부터 차올랐다. 어떤 단어로 이 마음을 치환할 수 있을까.
분명 이건 행복은 아니었다. 행복이라는 표현보다 조금 더 묵직한 마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커피 한 잔으로, 맑은 날 아침의 공기와 햇빛, 새소리, 파란 하늘과 기분 좋은 음악 소리에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아.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은 결국 일상에 있던 것들이구나.
여행은 어쩌면 행복을 찾으러 떠나는 일이 아니었나 보다.
행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면 여행이 끝나는 순간, 일상에서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려나. 그저 또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하다며 또 삶의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을까.
내가 오로라를 보면서 묵직한 마음을 느낀 건, 감사였다.
감사하는 마음, 책임감으로 마음의 무게가 느껴진 것이다.
살다 보니 내가 오로라를 보고 있다. -20도의 추위에도 밖에 서 있을 수 있는, 맨 눈으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건강한 몸이라 감사하다.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수십 년 뒤 딸이 채웠다. 기다릴 수 있고, 또 실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오히려 여행지에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지금 내 수준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어서 또 감사하다. 감사한 만큼 또 베푸고 나눠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 매일의 순간에는 곧바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여행은 다시 감사할 수 있는 시선과 마음을 살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