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8
캘거리를 떠나 오로라의 도시, 옐로나이프(Yellowknife)에 도착했다.
골목 하나가 다운타운의 전부인 이 작은 도시는 벌써부터 눈이 수북했다.
사실 눈은 어쨌거나 나에게는 조금 미화된 것이었다. 실제로 눈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도 있고 아마 ‘흰 눈이 내린다’는 것에 대한 문학적 예술적 표현에 얼마간 세뇌를 당한 것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산도 나에게는 안정과 치유의 공간이었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자연의 질서 속에 고요하게 나를 맡길 수 있는 곳. ‘살아있다!’고 소리치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묵묵한 생명력이 숲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렇게 내가 만난 자연은 우리들의 눈높이에 맞았다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늘 옆에 있어 다가갈 수 있고, 반대로 말하면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오브젝트인 듯 말이다.
언제 한 번 뉴질랜드 국적의 상사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상사에게 우리나라 제주도의 자연을 자랑했는데, 자연? 이러고 잠시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캐나다로 오는 하늘 길에서 본 록키 산맥, 또 오로라를 보고자 옐로나이프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눈.
아 맞다. 뉴질랜드의 자연이 이랬지. 상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냥 자연이라고 하기엔 단어의 그릇이 작은 느낌이다. 대자연이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눈은 살벌하게 왔다.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지만 우선 무서웠다.
록키 산맥은 왠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처럼 위용을 뽐내고 있다.
대 자연. 엄청나게 큰 위대한 자연은,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주지 않는다. 대자연을 마음대로 통제할 그 어떤 명분도 힘도 우리에게 없다는 인상이다.
그렇지만 또 다정하다.
해가 지기 직전의 하늘은 얼마나 파란지.
까만 하늘에 심심하지 않게 별은 또 얼마나 많이 보여주는지.
오로라를 펼쳐 보이며 그 많은 사람들의 눈에 눈물 쏟게 만드는지.
이곳의 겨울은 유난히 길 것 같다. 그러나 공존하는 법을 알고 있는 우리는 또 다정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