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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Nov 07. 2022

옐로나이프의 사람들

Day 10 


오로라 헌팅 이틀 차.


오늘은 호주에서 온 커플과 함께 투어를 나섰다. 밴쿠버에서 중고차를 구입하고 옐로나이프까지 운전해서 왔다고 했다. 이제 막 북미 로드트립을 시작한 젊은 남녀였다. 이들은 밴쿠버에서 시작해서 캐나다 횡단을 한 뒤 미국으로 내려갔다가 멕시코까지 (차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한 나라만 횡단해도 힘들 것 같은데 북미 3개국을 도로로 이동한다니, 대단하다. 3일짜리 투어를 신청했던 우리와는 달리 이 커플은 오늘 하루, 단 한 번의 시도로 오로라를 볼 기대를 하고 왔다.


오늘의 기온은 -20도. 체감온도는 -30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밤이었다. 히트텍 2겹, 기모 맨투맨, 플리스, 구스 패딩에 붙이는 핫팩으로 무장했다. 양말도 (울 양말을) 세 겹 레이어링 하며 발바닥 핫팩도 붙인 뒤 방한 부츠를 신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추위에 긴장이 되었다. 하늘은 맑았다. 보름달이 가까워질만큼 차오른 달의 빛도 매우 밝았다. 가이드님은 계속 오로라 위치를 확인하셨다. 멀리까지 온 손님들에게 오로라를 얼마나 보여주고 싶으셨을까. 어제도 오로라를 봤고 내일도 볼 수 있는 우리야 그렇다 치고, 호주에서 온 커플은 심지어 따뜻한 나라에서 와서 옐로나이프의 추위가 얼마나 당황스러우며 그럼에도 오로라를 보기 위한 하루를 계획했을 텐데. 가이드님의 부담감이 조금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오로라가 쉬이 눈앞으로 뿅 나타나 주지 않았다. 어제는 저녁 9시 30분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등장했던 오로라였다. 하지만 오늘은 오로라의 위치가 우선 너무 멀었다. 적어도 2시간은 기다려야 오로라권에 진입할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생각했는지, 가이드님이 갑자기 썰매를 타자고 제안했다. 썰매요? 난데없는 제안에 생뚱맞다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언제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썰매를 타보겠나… 아니 썰매 자체를 한국에서도 탈 일이 없는데 심지어 이 먼 곳에서 썰매를 언제 타보겠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차에 썰매 즈음은 다 가지고 있는 건지, 가이드님은 바로 트렁크에서 썰매 5개를 꺼내셨다. ‘어제도 썰매 탔어?’ 호주 커플 중 여자 친구가 물었다. 호주 친구도 조금 황당했나 보다. 


막상 썰매를 탄 5명의 다 큰 어른들은 깔깔거리며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앞을 보고, 또 과감하게 뒤로 돌아 썰매를 탔다. 크게 소리 내어 웃었더니 추운 것도 잠시 잊었다.


그리고 또 이동하여 이번에는 호수 변에 설치한 텐트에 들어갔다. 홈메이드 머핀을 까먹고 핫초코와 차를 내려 마시며 몸을 녹였다. 오로라가 뜨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호주 커플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커플들은 주변 친구들은 다 집 사고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는데 자기들은 돈을 모아 여행을 준비했다며, 여행이 끝나면 다시 열심히 일 할 거라 했다. 여러 모로 멋있다 느꼈다. 오랜 시간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마음 맞는 짝을 만났다는 점도 멋있고, 변호사라는 전문직이면서 자유로움을 선택하는 용기도 멋있었다. 그리고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게,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열심히 일 할 거라는 계획이 있는 자유라는 점도 멋있었다.




몸이 따뜻하게 데워진 후 다시 오로라를 찾으러 떠났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로라가 떴다! 연한 녹색 빛이 하늘에서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며 움직였다. 어제 한 번 오로라를 봤다고 금세 익숙하게 삼각대를 설치하고 야간 노출 설정, 조리개 확대, 타이머 세팅을 척척 끝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를 위해 별똥별이 많이 내려 주었던 오늘의 밤하늘. 아.. 너무 좋다. 


오로라가 옅어지면 또 이동했고, 벌벌 떨며 차 안에서 대기했다가 다시 나가서 오로라를 보고. 대기 중일 때는 차 안에서 잠깐 조는 친구도 있었다. 그나마 차 안은 덜 추웠는데, 잠도 못 자고 오로라가 뜨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이드님은 계속 밖에 서서 오로라를 기다리셨다. 추울 텐데 말이다.


오늘 밤도 나는 믿을 수 없는 풍경들 사이에 서 있다. 그 풍경을 채워주는 믿을 수 없이 멋진 사람들도 있다. 오로라를 보여주고자 추위와 고생을 감내하며 우리를 안내해주는 고마운 가이드님과, 안정적인 전문직을 내려놓고 갭이어를 가지며 본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와 여행을 하는 커플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수 없이 착한 여행 메이트와 함께 할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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