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오로라 헌팅 투어는 저녁 9시 30분 시작하고 새벽 2시 30분경 끝이 난다.
낮과 밤이 바뀐 일정에 체력을 회복하느라 3일 내내 낮잠을 꼭 챙겨 잤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피곤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이 작은 도시를 돌아다녔다. 영화 <윤희에게>, <남과 여>가 떠오르는 고요한 마을. 지붕 위에 두껍게 눈이 쌓인 집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 같았다. 온통 하얀색인 거리를 뽀도독 소리를 내며 걸어 다녔다. 귀엽게 양말까지 챙겨 신은 강아지와 인사도 나눴다.
오로라만큼이나 끼니도 잘 챙겨 먹었다. 제일 유명한 곳은 30년째 이어가고 있는 Bullocks Bistro로, 올드타운의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가게가 잘 되면 비슷한 메뉴를 들고 옆집에 새로운 가게를 차리면서, ‘떡볶이 거리’, ‘순대 거리’ 등 맛집 거리를 형성해버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잘 되는 가게가 잘 될 수 있도록 경쟁구조를 형성하지 않는 문화가 독특하면서도 좋아 보였다. 로컬과 관광객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변함없는 존재감을 갖고 있는 식당. 조금 잘 되면 메뉴나 인테리어를 바꿔버리는 우리나라는 로컬에게도, 관광객에게도 의도치 않게 소중한 추억을 지워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로컬들의 go-to place인 Birchwood Cafe Ko. 이곳에서는 Bannock이라는 빵이 유명하다. 스콘이랑 비슷한 모양새인데, 바스러지는 스콘과 달리 쫀득하다. 버터를 발라 먹으면 살살 녹는다. 고소해서 정말 맛있던 커피(아메리카노)와 먹었을 때 궁합이 정말 좋았다. 게다가 당근케이크도 제대로였다. 음~ 음~ 하며 먹게 된다. 가만히 카페에 앉아 로컬들이 모여들고 이야기 나누고 헤어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다운타운에서는 도서관도 찾아 가봤다. 가톨릭 국가여서 그런가, 일요일이면 유난히 문을 닫는 곳이 많았는데 갈 곳 없던 우리는 도서관에서 쉴 수 있었다. 아이들 데리고 책 읽으러 온 가족이 많이 보였다. 이 작은 도시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어진다는 점도 좋아 보였다.
그리고 Heritage Museum을 찾아갔다. 캘거리에서는 잘 안보였던 것 같은데, 옐로나이프에는 원주민이 정말 많았는데, 그들의 역사를 조금은 알 게 되었다.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죽을힘을 다 하는 원주민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금과 다이아몬드 냄새를 맡고 옐로나이프에 외부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혹독하게 추운 날씨에 사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원주민들은 어떤 나무를 사용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추위에 버티는지 하나하나 세세히 알려주며 돌봐주었다. 외부인들은 원주민 사회에 법과 규제를 적용하려 했고, 양 측의 갈등이 시작된다. 갈등과 중재, 화해로 이어진 역사 속에서 캐나다는 여전히 원주민에 대한 의식을 하고 산다. 원주민들도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고 목소리를 낸다.
새로운 문화가 더 좋아 보였으면 새것을 취하려 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로 들어왔으면 기존의 전통과 문화는 당연히 지켜줘야 하는 거 아냐?’ 순진하게 믿어버릴 수도 있지만, 당연한 것은 없다. 문화를 지키려는 소수의 목소리가 없다면 결국 다수의 ‘유행’에 묻혀버리게 된다.
결국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었다. 당연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건 없었다.
우리가 원래부터 살고 있던 땅이니까 우리 문화를 존중해 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면 원주민 문화는 남아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프레임에 가두길 저항했다.
조금은 이해가 된다.
단순히 ‘돌’, ‘집기’라고 네이밍만 한 박물관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던 Heritage Musuem. 꽤 재미있게 관람했다.
대체 여기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노잼의 도시다.라고 생각할 사람들의 선입견에 미리 방어를 치는 말도 있었다 “우리도 나름의 재미를 찾고 살고 있어요”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단어에 길들여져 있다. 다양한 게 좋다고 학습되었지만 그러면서도 생각 없이 내뱉는 말속에는 선입견과 편견, 안일한 말들이 많다.
12년째 옐로나이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가이드님도 이곳에서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왜 돌아가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 머릿속에서 ‘힘들면 돌아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당연해 보이지만, 상대의 사정을 모른 채 하는 말속에서 얼마나 자주 우리는 ‘다양성’을 파괴하고 얼마나 쉽게 ‘당연시’ 여기고 있었나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