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
옐로나이프에서 캘거리로 돌아가는 길. 작은 도시에서 만끽했던, 행복했던 3박 4일을 돌아본다.
온통 하얗게, 정말 하얗게 변해버린 눈의 도시. 마치 매일이 크리스마스인 듯, 가로수도 크리스마스트리인 동네 골목골목을 걸어본다.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인데, 현실 같지 않다. 분명 지금 뭔가를 느끼고 있는데 어떤 감정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자꾸 좌뇌가 먹통이 된다. 머리는 몽롱하고 가슴은 먹먹한 게 꼭 꿈을 꾸는 것 같다. 너무 좋은데 좋은 것도 말로 표현이 안된다. 어쩌면 좋다는 감정의 저 꼭대기 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살아 있음에 감사함’ 정도를 느끼는 것 같은데, 그것도 사실 잘 모르겠다.
마지막 오로라 헌팅을 떠나는 날, 갑자기 가이드님이 커뮤니티 센터에 데려다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처음으로 보았다. 신체 건강한 남성팀이 얼음 위로 매끄럽게, 그러나 힘 있게 퍽을 패스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하키 경기를 조금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괜찮았다. 우리나라에 조기축구회가 있다면 옐로나이프에는 아이스하키가 있다. 나는 지금 옐로나이프 커뮤니티가 살아가는 현장을 직관하고 있는 거였다.
썰매가 재밌었다고 했더니 또 썰매를 태워주셨다. 오로라를 보러 온 것도 내 인생 대대적인 사건인데, 그곳에서 썰매를 탄 일도 역시 믿기지가 않는다. 신나게 소리 지르며 흥을 발산시켰다. 밤 10시, 오직 달 빛 하나에만 의지하는 조용한 곳에 우리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말도 안 되었던 야간 산행. 프리루드(Prelude) 호숫가를 따라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 손에 작은 랜턴 하나씩을 쥐고 눈 위의 발자국이 난 길을 따라 뽀도독 걸어갔다. 사람의 발자국과 동물들의 발자국이 서로 만났다 헤어지는 길을 보며 조금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조용한 산에 몸을 맡겼다. 머리 위로는 달과 별이 빛났다. 도시의 흔한 불빛 하나 없는 적막 같은 어둠에 달 하나만 떠도 사물은 빛을 낸다. 색은 빠지고 빛이 생기는 밤 시간. 흑백 사진과 같은 풍경에 우리가 서 있다. 높이 솟아오른 가문비나무, 나무에 쌓인 눈, 얼음꽃이 핀 나뭇가지. 오로지 숲과 눈과 달과 별로 충만한 시간. 내 생에 다신 없을 옐로나이프 야간 산행이다.
3박 4일 동안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에 불과하다. 하지만 떠나는 날, 나는 말할 수 있었다.
옐로나이프, 참 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