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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Nov 03. 2022

침묵이 편한 사이

Day 06


함께 여행하기 좋은 사람이란 친한 사람일까, 가족일까, 아니면 혼자일까?



여태 혼자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여행하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때, 조금 더 자유롭게 목적지를 선택하고 떠났다. 제주도 여행부터 유럽 여행까지, 혼자 하는 여행은 나에게 가끔은 안전한 생활 반경 (comfort zone)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는구나’라며 머리로만 알고 있던 ‘다름’을 눈으로 직접 보며 크고 작은 고정관념과 선입견도 멀리 내보내 주었다. 그렇게 여행에서 만나는 날씨, 풍경, 맛, 흥분과 피곤함이 섞인 감정이 불쑥 고개를 내밀 때마다 그 찰나를 나는 마음으로만 기억하곤 했다.


가끔은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 같이 밥을 먹거나 야경을 보러 가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 속에 어색하게 껴서 원데이 투어를 간 적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에서 혼자이기 싫어 사람을 찾을 때에도, 금방 다시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나의 감정을 공유할 상대가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생각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는 왠지 여행의 감상을 나누기 힘들었다. 서로의 필요 - 사진 찍어주기, 밥 같이 먹기 - 를 채우기 위한 동행과는 대화가 길어지지 않았다. 그들과의 침묵은 불편한 숨 막힘에 불과했다.



지금, 캐나다에서는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다. 함께 있지만 디지털 노매드로 지내는 각자가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을 쓰는 일이 전혀 아깝지 않다. 엄청 친했던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서일까 투머치 토크로 진이 빠지지도 않는다.



여행을 자꾸 하다 보니 여행하는 '내 모습’도 변하고 성장했다. 이제는 사진을 찍고 유명 맛집에 가기 위해 굳이 동행을 구하고 싶지 않다. 면세품을 사거나 쇼핑에 연연하지 않는다. ‘뽕을 뽑는’ 소비나 사진 한 장으로만 남아 있는 경험보다는, 그곳에 대한 나의 느낌과 감상이 기억되는 경험이 더 가치 있음을 깨달았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어서 오히려 좋은, 언니와 함께 가끔은 침묵으로 또 가끔은 대화로 하루를 채운다.


어느 하루, 어른스러운 언니의 말.


“누구나 아픔이 있다. 외적으로 귀가 잘 안 들린다던지, 눈이 잘 안 보인다던지 하는 아픔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마음에 더 큰 아픔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들인 것이다. 서로 아픔을 이해하고 돌봐줘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누구든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살아가면서 익숙해지며 나타나는 그 사람의 원래의 습관들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타인도 나의 어떠한 점들을 참고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과 하는 여행.

눈이 펑펑 와서 멀리 나가지 못하고 집 근처 카페 한 곳밖에 갈 수 없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날려버린 아까운 하루가 아니다. 인증샷 하나 보다 더 값어치 있을 이야기가 있는 하루였다.


간 곳이라곤 카페 뿐이었지만 좋았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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