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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Nov 04. 2022

소도시의 현대 미술관

Day 07


난 미술관 가는 걸 좋아한다. 


오디오 가이드에 의존하고 유명 작품 인증샷을 남긴 뒤 바로 자리를 뜨던 초보 관람객이었지만, 그럼에도 또 미술관을 찾고 찾았다. 취향도 없었다. 예쁜 그림이 제일 좋았다. 무엇을 감상해야 할지 몰랐다. 와 잘 그렸다? 정도의 감탄을 해야 하는 건가.


나에게 제일 어려웠던 곳은 현대 미술관이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작품들이 ‘예술’이라니.

그렇지만 현대 미술관도 찾고 또 찾았다. 


캘거리에서도 현대 미술관을 찾았다. Contemporary Calgary 홈페이지를 통해 두 가지 기획 전시가 진행 중이라는 정보를 확인했다. 어떤 전시인지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도 몰랐지만, 꾸준히 미술관을 드나든 결과 최근 현대 미술을 관람하는 재미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던 덕분이다. 전시 정보를 알고 가면 오히려 작품 속으로 빠지는 데에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입장료는 10달러. 국립현대미술관을 기준으로 해서 그런지 조금 비싼 느낌이다. 세금이 붙어 총 10.15달러를 지불했다. 아직 외국 동전에 익숙하지 않아 20달러 지폐로 냈더니 젠장, 동전이 더 많이 생겼다.



현대 미술관 가는 걸 특히 좋아한다. 

작품 해석에 정답이 없다는 점이 재미있다. 뻔해 보이는 것들을 지루하다고 말하고 싶고, 정답이 있다고 하는데 의심을 해 보고 싶다. 내 마음대로 해석한 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확인하면 더 재미난 스토리가 생겨난다. 


1층에서 시작된 전시는 Human Captial이라는 전시였다. 사뭇 통일감이 떨어지는 작품이 듬성듬성 전시되어 있었다. 뜬금없는 립톤 티백, 동양인과 흑인의 사진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뭘까. 아름다움, 생존, 존재를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아쉬운 이야기들. 거기서 ‘인간다움’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한 대명사’로서 존재당하고 있다. 존재를 ‘당한다’는 뜻은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를 인정받는 것과 다르다.  캐나다에서 살아가며 아무개가 아니라 ‘이민자’, 홍길동이 아니라 ‘아시안’, 이름 없는 ‘대명사’로 취급받던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었다. 본인들은 사회에서 정해버린 대명사로 존재를 당하고 있다고. 


현대 미술이 재미있는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바로 지금의 유행, 동시대의 현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단일 민족 국가였다. 외국인, 이민자, ~나라 사람이라는 말이 자주 입술에 담긴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반면 캐나다는 원주민이 있던 땅에 이민자가 들어오며 인구가 형성되었다.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상상하지 못했던 우리. 우리의 예술에는 한국이 경험하지 못한 역사, 시대가 요구하지 않았던 부분 혹은 반영하지 못했던 부분도 반드시 있는 건 아닐까?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공감대 형성이라고 한다.

캘거리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현대 미술관. 한국인으로서는 알지 못했던 ‘다민족 사회의 분투’를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캐나다 이민자로서 정착하며 힘든 마음을 털어 놓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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