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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Nov 13. 2022

인생을 바꿀 록키 여행

Day 14 


굿모닝 반프! 숙소의 문을 열면 록키 산이 보이는 곳에서 반프 이틀째 아침이 밝았다. 낮에는 영하 5도까지 기온이 올라간다. 이제 영하 10도가 되지 않으면 우습게도 꽤나 따뜻한 것 같다고 착각에 빠진다. 두고두고 무용담처럼 말하게 되겠지. 너네 영하 몇 도까지 있어 봤냐고. 난 -27도에도 있어 봤다고. 맑고 깨끗한 오늘의 날씨, 우리의 몸을 녹여 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길을 나선다.


록키산맥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은 반프(Banff) 국립공원이지만, 반프를 베이스로 해서 쿠트니 국립공원, 요호 국립공원, 재스퍼 국립공원 등 가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반프가 가장 유명해진 이유는 Lake Louise 때문인데, 이번 투어의 하이라이트로 남겨두고 오늘은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역시 눈길이 위험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며.




길 따라 펼쳐지는 록키는 다시 봐도 장관이다. 워낙에 높은 산이라 육안으로도 수목성장 한계선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어느 선을 기준으로 아래는 나무가 빼곡하고 위로는 암석과 빙하에 눈이 가득하다. 눈을 무겁도록 많이 지고 있는 나무도 있고, 어느새 눈이 증발해버려 (추운 기온이라 눈이 녹지 않는 대신 너무 건조해서 증발해버린다고!) 마치 소금 몇 알이 올려져 있는 소금빵처럼 눈송이가 콕콕 박혀 있는 나무도 있었다. 건조해서 뭉쳐지지 않는 캐나다의 눈. 눈이 쌓여있는 록키 산맥은 꼭 눈꽃빙수 같기도 하고 슈가파우더를 뿌린 시나몬빵 같기도 하다. 거대한 빙수의 세계에 미니어처가 돼 버린 상상을 해 보다가 첫 번째 목적지인 요호 국립공원에 있는 에메랄드 레이크에 도착했다.


에메랄드 레이크



어제 본 마블 캐년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에메랄드 레이크는 입구에서부터 가볍게 마블 캐년을 압도했다. 산이 품고 있는 호수는 물안개를 피워내고 있었고 햇빛을 받은 눈과 얼음, 호수 표면은 싱그럽게 반짝였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머릿속에서 ‘현실’이라고 프로세싱하느라 몸이 저절로 굳어졌다. 걸음을 옮기면 또 ‘비현실적’인 모습이 눈앞에 드러난다. 호수를 따라 난 길을 타고 산 언덕 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름 그대로 호수가 에메랄드 색으로 보였다. 나무의 머리가 눈과 얼음으로 하얗게 타버린 것을 보다가 시선을 옮기면 또 겨울 왕국처럼 하얀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한 없이 부족한 곳.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극에 달할 때 우리는 놀라워했다가, 놀라움이 조금 진정되면 감동을 받고, 그 여운으로 꽤 멍한 상태로 남게 된다. 좋다!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술한 표현인가. 좋다는 건 즐겁고 재미있어 기쁜 감정이겠지만, 에메랄드 레이크가 ‘좋았어’라고 단순히 덮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겸허해졌고, 그 순간이 재밌어 들뜨기보다는 고요히 낮아졌다. 감히 말을 더할 수 없고, 감히 어떠하다고 할 수 없는 경이. 자연의 초월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에메랄드 레이크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차로 돌아왔다. 와…. 와… 감동의 여운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런 우리를 태우고 가이드님은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눈 때문에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고. 막상 도착하니 차도 꽤 주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었다. 페이토 호수라는 곳이었다. 10~15분 정도 숲 길을 걸어 들어가면 호수가 나온다고 했다. 에메랄드 레이크의 감동에 홀려 있다가 겨우 현실감각을 되찾았나 했는데, 이곳에서 다시 혼미해졌다. 아니, 말이 안 되는 공간이 펼쳐졌다. 하얀 세상 속으로 내 몸을 넣었다. 하얗고 또 하얀 길. 나무 사이사이로 눈이 수북하다. 하얀 페인트를 부어놓고 나무 부분만 닦아 낸 것 마냥 눈부시게 하얀 숲 길을 걸었다. 멀리 보이는 산도 하얗다. 이런 곳이 다 있나… 지구가 아니라 어디 다른 차원의 세상에 들어온 것 아닌가… 와.. 와.. 와…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올라와서 만난 푸른색 페이토 호수. 와..!!!!!!! 나지막하게 공기 새어 나오는 소리의 감탄에 이제 느낌표가 붙었다. 에메랄드 레이크에서 받은 감동보다 더 큰 감정이 요동쳤다. 와 하하하… 비현실적인 모습이 허탈해서 인지 웃음까지 났다. 



파란 하늘과 청록색 호수를 제외하곤 눈의 세상에 서 있다. 햇살은 곳곳에 스며들어 온통 반짝거린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환하다. 우리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완벽하게 아름답다. 언어가 없이도 우리를 웃게 만든다. 자연 그 자체로도 언어 없는 글로벌 콘텐츠가 된다. 모두를 화해시키고 연대하게 만드는 최고의 콘텐츠, 그 자연의 질서를 오래오래 유지해서 오래오래 함께 누리고 싶다 생각했다.


페이토 레이크



에메랄드 레이크, 페이토 레이크 2 연타를 맞았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93번 도로를 타고 재스퍼 국립공원 쪽으로 이동했다. 과연 가장 아름다운 도로다웠다. 끝없이 이어지는 록키 산맥을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며 콜롬비아 아이스필드까지 오는 드라이브 코스에서 우리는 모두 말을 잃었다. 조용히 눈으로, 아니 마음으로 그 모든 풍경을 담고 이해하려 했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에서는 실제로 빙하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저 빙하가 어느새 많이 녹아버렸다는, 산의 모양이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빙하가 녹는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체감할 수 없었는데, 이 나라에서는 현실이었구나. 좋은 건 오래 지키고 싶은 당연한 마음일 텐데, 내 잘못도 아닌 결과로 빙하가 녹는다면 정말 슬프고 화가 나지 않을까.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산 봉우리쪽 빙하가 육안으로 확인 된다)



자연 안으로 잠깐 들어가는 경험을 했을 뿐인데, 내 안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생각의 덩어리가 생긴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생각과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은 경험의 덩어리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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